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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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송준호 교수의 진솔한 의학 이야기


송준호 교수의 진솔한 의학 이야기



고타마 싯다르타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고행에 나섰다. 오랜 명상 끝에 깨달음을 얻고 붓다로 추앙받았지만 왜 늙고 죽는지에 대한 답은 얻지는 못했다. 기독-유대 문화권이나 이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슬람권은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인간의 죄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죽음과 노화는 6억년 전 지구의 생명체가 다세포를 이루고 유성생식을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 분열을 하는 생명은 영원히 살 수 있다. 아메바나 히드라가 그렇다. 식물들도 불멸한다. 멋진 와인을 만드는 까르베 소비뇽은 800년 전부터 가지치기로 이어온 클론이다. 모하비 사막을 굴러다니는 작은떡갈나무덤불은 천년을 살아온 존재이다. 그런데 캄브리아기에 지구 대부분을 차지한 유성생식종들은 때가 되면 죽는 길을 택한다. 이들에게 죽음은 왜 나타났을까?
자연의 생물에게 세균, 바이러스 같은 기생충들은 멸종을 부르는 적이다. 전투는 치열했고 적들은 너무 빨리 진화했다. 무성생식종은 기하급수적인 번식, 즉 수로 이 문제를 극복했지만 자손을 많이 낳지 않는 유성생식종은 종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 결과가 새로운 자손에게 유전자를 넘겨주고 자신의 육신은 적과 함께 옥쇄하는 전략이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주적은 기생충에서 유전자 손상으로 바뀌었다. 살아가면서 DNA가 망가지고 유전자 손상이 쌓인다. 이것이 오래 되어 생식세포에 손상이 누적된다. 생식세포의 고갈은 멸종을 의미한다. 버그가 누적되고 바이러스 감염이 수 차례 일어난 컴퓨터와 같다. 정리해보기도 하고 포맷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폐기하고 새 컴퓨터로 데이터를 옮기게 되는 것 더 손상이 오기 전에 세대를 교체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싯다르타의 고뇌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고등동물로서 다양성을 위해 생식하고 돌연변이와 손상을 걸러 내주기 위해 죽는다.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에게 생로병사의 고통이 태어났다. 죽음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만든 생명의 발명이었다. 죽음은 두렵지만 막 태어난 아기의 풋풋한 살내음과 싱그런 피부를 보면 영생보다 교체를 택한 것이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인간이 이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 십만 년 동안 40년에 미치지 못했던 인류의 평균 수명이 지난 세기 선진국을 시작으로 80세를 넘어섰다. 우리 아이들의 반 이상은 90세가 넘게 살 것이다. 인류가 생물학적 종을 탈피하고 문화적 종으로 자리바꿈한 결과이다. 인간은 마음먹고 피임을 하고 유전자에 손 댈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자연 선택과 지배에 속박 받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에 손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전례 없이 안락하고 긴 수명을 누리면서 그 이면에 나타나는 저출산의 암울한 그림자에 두려워하고 있다. 어쩌면 캄브리아기에 구축한 종의 생존 전략이 폐기되고 개체의 삶의 질로 중심이 옮겨지는 진화의 새로운 국면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40세가 넘어 가면 뱃살이 쳐지기 시작하고 머리카락이 탈색되면서 숱이 부쩍 줄어든다. 50세가 되면 맨 눈으로는 스마트폰의 글자를 읽기 힘들어진다. 간 수치와 콜레스테롤 수치가 슬금 슬금 오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고무가 삭고 쇠가 녹슬어 무너지는 고물 차와 같은 처지이다. 식물들은 끝없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고 변형과 손상이 무제한 보수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때가 되면 분열을 멈추고 보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렇게 늙어 간다.
과학자들은 늙고 병드는 이유를 찾고 있다. 많은 이론들이 나오면서 크게 두 관점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진화의학적 관점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생명체가 유전자를 퍼뜨리는 시점까지 모든 자원을 투입하느라 그 후 일에 눈 감은 결과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도를 피하기 위해 채권을 남발한 회사와 같다. 다른 하나는 금세기 분자생물학적 발견으로 나타난 관점이다. 노화가 어떤 목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 같다는 관점이다. 전자가 노화가 근시안적 계획의 파편이라면 후자는 의도적인 계획의 결과라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관점을 이야기해 보자.
인간이 지금처럼 길고 안락한 삶을 산 것은 최근 일이다. 수백만 년의 세월 동안 인류들은 혹독한 자연 속에 위험과 포식자로 가득 차 있는 세계를 살았다. 농업혁명 이전 인간의 평균 수명은 20~30세였다. 늙는다는 것은 오늘날 100세 이상 초장수 노인을 보는 것처럼 희귀한 현상이었다. 삶의 의미는 오로지 20년 이상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는 것이었다. 어떤 유전자가 50세에 죽음을 가져온다 해도 청년기까지 사는 데 득이 된다면 선택되었다. 이런 형태의 근시안적 자연 선택은 인간이 나타나기 수억 년 전부터 작동하여 유성생식 종들의 삶의 형태를 빚었다.
암이나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현대인들의 대표 질병들은 모두 40세가 지나야 나타난다. 인류 역사 대부분 죽음이란 질병이 아니라 피를 많이 흘리거나, 탈수가 되거나, 굶거나, 살해되거나, 잡혀 먹힘의 결과였다. 농업혁명 이후에도 노역과 기근과 전쟁과 싸우느라 비만이나 고혈압에 걸릴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200년 전부터 상황이 급변한다. 주위에는 기름지고 달고 짠 음식이 쌓이고 수명은 3배로 길어졌다. 걷는 일 이라고는 먹거리 사러 마트 가는 일 정도이다.
수백만 년 동안 생존을 위해 모아 놓은 장점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불협화음을 내게 된다. 물과 소금을 붙들어 두는 능력은 고혈압을 조장하고, 지방을 재어 놓는 능력은 당뇨병과 비만을 불러왔다. 공격이나 사고에서 살아 남기 위해 획득한 피가 잘 굳는 형질은 심근 경색증이나 뇌졸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맹수의 신호를 포착하고 강력한 회피 반응을 보이도록 단련한 뇌 회로는 불안증을 조장하고 있다. 인간을 사망으로부터 지켜준 유전 형질들이 이제는 선진 국가 사망자의 75%를 차지하는 병들의 원인이 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 프랑수아 자코브는 자연은 설계도를 가지고 생명체를 빚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그때 그때 손에 잡히는 것들을 모아 두들겨 맞추는 땜질공과 같다고 했다. 질병과 노화는 예상치 못한 수명 연장으로 드러난 땜질의 결과라는 것이다. 달리 비유하면 질병과 노화는 부도 위기를 넘긴 회사에 쌓인 부실채권 뭉치들인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노화를 좌우하는 몇 개의 회로들이 발견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이것은 노화가 설계된 것일 수 있으며, 그 회로를 통제하면 노화를 정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질병과 노화는 긴 진화의 시간 동안 생식 이후 삶이 자연 선택의 관심에서 벗어난 결과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 반대 시각도 있다. 젊은 개체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늙은 개체가 제거되는 프로그램이 진화되었다는 관점이다. '예정된 죽음 가설' 이라고도 한다. 이 가설은 수명을 좌우하는 유전자들이 발견되고, 세포의 자멸사 현상이나 DNA 분열 회수에 제한에 거는 텔로미어 같은 장치가 확인되면서 힘을 얻고 있다.
'프로그램' 관점은 죽음이 개체에게는 손해이지만 종 차원에서는 이익이 된다는 집단이익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명을 제한해서 빨리 교체하면 종의 진화가 촉진되어 적응이 빨라지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이다. 햄버거 가게가 불편한 의자를 설치하는 것과 같다. 오래 앉아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는 것이다. 회전율이 빠르면 가게가 잘 돌아가 번창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 세계를 장악한 거대 햄버거 회사도 있다. 이런 효과로 수명을 제한하는 프로그램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만은 예외적으로 회전율이 낮아지고 수명이 늘어났다. 여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첫째, 잡혀 먹히는 쪽에서 잡아먹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 덕에 쥐나 연어처럼 서둘러 많은 자손을 낳고 떠나야 하는 신세에서 벗어났다. 둘째, 지능종으로 특화되면서 뇌가 커졌고, 긴 양육 기간이 필요해졌다.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고 남성이 생계에 매달리게 되었다. 여성은 자신의 생식을 중단하고(폐경이 있는 동물은 인간과 몇 종의 고래밖에 없다) 할머니가 되어 손주의 양육을 돕는 인류 특유의 삶의 형태가 나타난다. 오랜 양육이 수명을 길게 하는 현상은 자연에서도 꽤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자의식이 깨어나면서 죽음을 의식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지능과 결합하여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문명과 의학으로 인간의 수명은 2배 이상 늘어났다.
길어진 노화는 인류를 똑똑하게도 만들었다. 러시아 생화학자 스쿨라체프의 비유를 가져와 보자. 빠른 토끼와 똑똑한 토끼가 있다. 아무도 늙지 않으면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속도가 커트라인이 되어 빠른 토끼만 살고 똑똑한 토끼는 살 기회가 없다. 그런데 노화라는 것이 나타나 토끼들이 늙기 시작하면 똑똑한 것들이 능력을 발휘될 기회가 나타난다. 긴 노화 덕에 지적 능력이 인류의 특성에 합류된 것이다. 노화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물개나 고릴라의 세계와 같이 힘센 놈들이 모든 걸 차지하는 비정한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금세기 수명은 정말 길어졌다. 기대 수명이 90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5세 미만 영유아 인구를 넘어섰다. 2050년에는 전체 청소년층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세상이 손님들이 두 세 시간 눌러 앉아 있는 햄버거 가게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종이 늙어 가는 말세의 징조일까? 새로운 국면으로 나가는 진보의 과정일까?
우리는 더 이상 번식에 목을 거는 종이 아니다. 생물학적 생태계 대신 사회 문화적 생태계를 구축하여 그 안에 산다. 자연선택에서 벗어나고 유전자의 변화는 거의 멈추었다. 우리 손으로 유전자를 편집할 수도 있으며 정보가 유전자를 대신한다. 팔 힘이나 다리 속도보다 계좌의 숫자가 생존을 좌우한다. 다른 종들처럼 햄버거만 먹고 얼른 비켜줘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노트북 전원을 꽂고 눌러 앉아 몇 시간 두뇌 작업이나 게임을 즐기는 카페 족 같이 되어 버렸다. 삶의 순환 방식이 햄버거 가게 모드에서 카페 모드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요즘 카페들도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에 콘센트를 없애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도 이런 문제를 조금은 걱정해야 할까? 콘센트를 없애는 카페와 더 많이 설치하는 카페 중 어느 쪽이 결국 생존할지 자못 궁금하다.
위 글은 노화와 죽음의 기원을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다루었다.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열심히 파고 드는 것은 수명을 연장하고 건강하게 살 방법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에 삶의 길이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는 한 틈새를 찾아냈다.
6억년 전 바다 속을 유영하던 작은 세포로 시작한 생명체는 점차 다세포 군체를 이루고 유성생식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불멸을 버리고 유한한 삶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수 많은 세포가 하나의 몸으로 성장-생식-노화-사멸로 이어지는 삶의 주기를 차질 없이 완수하려면 계획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된다. 이것을 위해 몸을 성숙시키고 때가 되면 생식을 해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조절해 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성장 영양 통제 시스템이다.
기나 긴 진화의 세월 동안 만들어진 이 시스템은 효모에서 초파리, 선충, 쥐, 인간에 이르기까지 종을 초월해 모든 생명체 안에 새겨져 있다. 모든 자동차가 어떤 연식과 모델이든 각자 버전의 조향 장치나 연료분배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진화적으로 보존된' 시스템이라 부른다. 인간의 몸에는 이 장치가 '성장인자 IGF-1 시스템'과 우리가 잘 아는 '인슐린 시스템', 이렇게 두 가지로 분화되어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 시스템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몸을 '성장-번식' 상태와 '보수-유지' 상태 중 한 쪽을 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원과 영양원이 풍부한 상황에서는 성장하고 번식하는 데 모두 쏟아 넣지만, 불리한 환경에 접하면 손상에 대한 내성을 올리고 몸을 보수하는 쪽으로 자원을 돌린다. 생식을 포기하고 오래 버티고 사는 쪽으로 '트레이드 오프' 해 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플랜 B'를 작동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수명 연구의 표준 모델인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의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유명한 수명 연구 동물은 기아나 고온 또는 유해 환경에 직면하면 성장과 번식의 과업을 중단하고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몸을 보전하는 기전을 활성화된다. 결과적으로 노화는 늦어지고 수명은 연장된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플랜 B를 발동시키는 어처구니 없이 간단한 방법이 발견된다. 덜 먹는 것이다. 먹는 양을 평소의 30% 이상 줄이는 '칼로리 제한'은 모든 동물 실험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검증되었다. 1980년대부터 발견되어 학계를 흥분시킨 mTOR, 시르투인 같은 장수 유전자 스위치들이나 메트포민, 라파마이신 같이 장수 후보 물질로 첨예한 관심을 받는 것들이 모두 복잡한 기전을 돌고 돌아 플랜 B를 가동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성장과 번식을 끌어 가던 동력이 어느 때가 되면 노화를 조장하는 원인이 된다. 적당한 시기에 이 힘을 끄고 플랜 B를 강력하게 작동해 주는 것이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이다. 중•장년기부터 꾸준히 절식이나 중등도 이상의 운동과 같은 적당한 신체적 스트레스를 유지하면 몸의 손상에 대한 방어력과 복구 능력을 올리고 노화를 미룰 수 있다. 기적의 장수약이 나온다면 그런 작용의 물질일 테니 기다릴 필요 없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젊은 세대들이 삶이 너무 치열하고 각박해 일치감치 플랜 B로 들어가 버리는 듯 한 점이다. 개인의 수명은 길어질지는 몰라도 사회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플랜 A 활동에 집중하길 원한다면 그 나이의 삶을 풍요롭고 편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진화 생물학적 눈으로 보면 젊은 사람이 좀 더 넉넉하게 살고 나이 든 사람이 약간 부족한 듯 사는 것이 양 쪽을 위해 좋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료를 봐 드리는 분 중에 잘 아는 인사의 부인이 있다. 많이 배우고 교양도 갖춘 주부 사모님이다. 최근 들어 혈압과 검사 수치가 매우 좋지 않아 무슨 스트레스가 있는 지 여쭤보았더니 몇 달 동안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들이 자기보다 세 살이 많은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자기는 절대로 용인하지 못하겠다며 강대강 대치 중이라 한다. 아들은 38세, 상대 여성의 나이는 41세이다. 여성 쪽은 큰 기업의 부장까지 진급하느라 결혼이 늦었다. 40대 출산이 요즘 드문 일이 아니지만 당사자들이 2세를 갖는 것에 그리 연연할까 싶다. 사모님은 아들에게 섭섭하고 상대 여성에게도 화가 나는 모양이다. 공감이 간다.
얼마 전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 아이돌 <블랙핑크>가 새 앨범을 세계 차트 1위에 올렸다. 이 앨범에 <타이파 걸 (Typa girl)>이라는 곡이 있는데 눈에 띄는 가사가 있다. '난 식탁에 돈을 가져다 놓지, 저녁 차려주는 대신…' 편향이 있겠지만 이게 신세대들의 타입이다. 사모님 아들도 상대 여성의 '뛰어난 업무 능력'에 반했다 하지 않는가? 아들은 '타이파 걸'을 찾은 것 같다.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는 신간에서 MZ 세대가 결혼을 꺼리는 것은 가난으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공포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런던경영대학원의 노인학 대가 린다 그래튼 교수도 100세 시대를 살아 내려면 맞벌이가 아니면 결혼하지 말라 단언했다.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결혼의 결정 요인인 시대가 이미 온 것이다.
통계로 볼 때 사모님은 앞으로 30년은 사실 것이다. 5년 정도는 손자 양육에 동원될 수 있다. 외가 쪽에서 봐 주는 게 대세이니 미운 며느리보다 분신 같았던 딸의 자녀에 매달릴 확률이 높다. 효도 여행 가자 하면 처음에는 기쁘지만 75세가 되면 뼈가 아파 달갑지 않아진다. 그냥 평소에나 신경 좀 써주면 좋겠다 싶어진다.
80세가 넘어 가면 자녀를 봐도 옛날만큼 행복하지 않다. 자식을 볼 때 뿜어져 나오던 행복 호르몬 옥시토신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5년은 남편을 보내고 혼자만의 삶을 살 확률이 높다. 그 나이에 그건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적당할 때 먼저 가 주지 않으면 남편 수발하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다. 30년은 정말 긴 세월이다.
사모님과 블랙핑크뿐 아니라 주치의도 나름의 3자 견해가 있다. 이런 것이다. 자식의 미래는 당사자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삶과 건강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아들 배우자 나이보다 본인의 건강 나이가 더 중요하다. 세월을 지탱할 뼈와 근육을 보존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영양을 잘 섭취해야 한다. 고령이 되면 3분의 1은 심뇌혈관 질환, 3분의 1은 암에 걸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이런 병들은 곧 사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잘 대비하면 오래 살아 낼 수 있고 어설프게 대비하면 아픈 기간이 끝도 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
부모의 건강은 자녀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부모의 질환으로 한참 활동 중인 자식들이 아이들 교육이나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명민한 며느리 후보자 역시 이걸 예측하고 시어머니의 가치관과 건강을 면밀히 평가하고 있을 지 모른다.
지난 편에 과학적으로 다루었지만 웬만한 건 구세대가 새로운 세대 쪽에 양보하는 것이 번식과 장수 양쪽 측면에서 양자에게 이득이다. 아무쪼록 두 여성이 잘 타협해서 상호 호혜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편과 아들과, 더 나가 사회의 미래가 두 분에 달려 있다.
올해 태어난 토끼띠 아이들의 기대수명은 84세를 돌파할 듯하다. 그 해 출생자의 기대수명은 보통 2년 후 발표되지만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그럴 것으로 보인다. 올해 65세가 되는 어르신은 앞으로 22년을 더 사시고, 75세 어르신은 13년을 더 사실 것이다. 가감 없이 통계청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팩트이다. 고령자 기대여명이 올해 태어난 아이들의 기대수명보다 더 길게 나오는 것은 사망자들이 제외되고 남은 생존자만의 통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200년 동안 일이다. 200년 전에는 세계 어디에 살던 기대 수명은 40대 이하였다. 지금도 지구촌 저쪽 빈곤국에는 평균 수명이 40세인 곳들이 있다. 우리나라 1942년 기대수명이 45세가 안 되었다. 이렇게 짧던 수명이 20세기 후반쯤 선진국들을 시작으로 80대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농업혁명 이후 만년 동안 정체 상태이던 수명 곡선을 꺾어 올린 것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이 지구 오염과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부의 효과로 위생 개선과 의학 발전을 견인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한 것이다. 유엔 통계를 보면 일인당국민소득이 연 100달러에서 1만 달러가 될 때까지 평균 수명이 40세에서 70세까지 일직선으로 비례해서 증가하고 그후로는 완만하게 증가한다. 연소득 1000달러 증가에 수명이 1~3년 길어지는 셈이다. 그러니 오래 사는 100% 확실한 방법은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20세기 초 만해도 학자들은 수명 증가가 곧 멈출 줄 알았다. 1928년 루이스 더블린이라는 통계학자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64.75년까지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막상 자신은 80세가 넘게 살았고 기대수명은 매번 상향 조정되었다. 2세기 동안 한 시간에 15분씩 늘어난 인간 수명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가장 오래 산 인물은 969세를 살았다는 구약의 므두셀라이다. 위스키 '올드 파'에 이름을 남긴 영국 농부 토마스 파는 152세를 살았다고 전해지고, 중국은 이에 질 세라 256세를 산 리칭위안이란 사람을 내놓았다. 믿을 만한 기록 중 최고령은 90세에 주택연금을 가입해 30년 동안 연금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122세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여성 장 루이스 칼망일 것이다.
2015년 앨버트 아인슈타인대학 연구팀은 인간의 최대 평균수명은 115세, 절대 한계 수명은 125세일 것이며, 만 명중 한 명이 120세를 넘길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2018년 이탈리아 사피엔자 대학의 팀은 10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더 이상 사망 증가가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수명에 한계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보수적인 의학자인 필자는 전자를 믿는 쪽이지만 인류 수명 연장을 목표로 구글이 세운 첨단 기업 칼리코는 후자를 믿고 형제 종의 10배를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비밀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칼리코가 맞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미 장수 열차에 올라탔다. 60세에 처음 병원을 방문해 20~30년을 더 다니는 시대이다. 의사들의 목표는 오래 살게 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날까지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삶의 마지막 아픈 기간이 최대로 짧게 하는 '질병압축'이나 신체 기능 감퇴를 최대 연기해서 마지막 날 제로가 되게 하는 '체기능변화의 직각화' 같은 낯선 명칭의 주제가 의학자들 간 떠오르고 있다. 길이가 아니라 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경제 사회 분야나 정부도 이런 문제를 전력을 다해 대비하고 있는지 걱정이 든다. 노인의 정의에서부터 은퇴 연령, 연금 수급 문제까지 고령화 사회에 맞춰 다시 정비해야 할 사항이 산더미이다. 충분한 대비가 없으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을 제외하고 과식을 걱정하는 동물은 없다. 모든 생명체는 먹을 것을 찾아내고 몸 안에 영양을 잘 재어 둬서 유사시를 대비하도록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100년 전부터 인간에게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먹을 것이 넘쳐 필요한 양을 초과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2~3세대 전 일어난다. MZ세대들은 다이어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그 할아버지 세대는 먹을 것을 갈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0년대에 코넬대 생화학자 클라브 매케이는 이상한 실험을 했다. 실험 쥐를 한쪽은 먹는 양을 30% 줄이고 다른 한쪽은 실컷 먹도록 놔둔 후 얼마나 사는지 관찰했다.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덜 먹인 실험 쥐가 양껏 먹은 쥐의 두 배 가까이 산 것이다. 수명이 인위적으로 연장된 최초 사건이다. 그런데 당시는 평균수명이 40대에 불과했고 배 나오고 뚱뚱한 사람이 선망받던 시대였다. 덜 먹으면 오래 산다는 주장은 난센스였다. 매케이의 실험 결과는 무시당하고 곧 잊혔다.
시간이 지나 어떤 생물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성장과 번식을 멈추고 몸의 보수와 유지에 매달리는 '플랜 B'를 작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영양이 모자라면 과업을 중단하고 보수 모드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 노화가 늦어지고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드디어 수명 조절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선충에서 먼저 발견된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수명이 2배 이상 연장되었다. 인간에게서도 4~5개의 유전자 경로가 발견된다. 사람들은 흥분했다. 스위치를 찾았으니 조작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과학자들과 제약회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이 유전자들을 끄거나 켜는 물질들을 찾기 시작했다.
연구가 축적되면서 과학자들은 모든 수명연장 경로가 결국 하나의 시스템으로 귀결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영양과 에너지 감지 시스템이다. 다세포 생명체가 영양 상태에 따라 소모와 절약의 균형을 잡고 성장과 번식과 사멸의 주기를 일사불란하게 동조시키기 위해 수 억 년 전 동안 진화시킨 장치이다. 비유하자면 자동차의 연료분배장치 같은 것인데, 이 장치는 연료가 모자라면 엔진을 절약 모드로 바꾸어 오래 가도록 한다.
지금도 여러 가지 유전자 스위치를 조작하는 후보물질들이 연구되고 있지만 부작용 때문에 아직 사용은 요원하다. 그런데 의학자들은 이 약물들을 '칼로리 제한 모방약물(Calorie Restriction Mimetics)'이라 부른다. 결국 칼로리 제한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매케이 실험 이후 한 세기 동안 복잡한 길을 돌고 돌아 답은 소식인 것이다.
칼로리 제한이란 비타민, 섬유질, 미네랄이 충분한 좋은 질의 식사를 유지하면서 전체 식사량 30% 이상 줄이는 것이다. 이게 힘들기 때문에 간헐적 단식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음식의 질을 가리지 않고 마구 먹는 사람이 수명이 짧은 것은 확실하고 질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수명이 길어지는데 그중 소식하는 사람은 건강 수명이 5년 이상 길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이런저런 낭설과 달리 칼로리 제한은 한 세기의 치열한 과학적 검증으로 살아남아 유망한 분야로 자리 잡은 정설이다. 소식의 적절한 시기는 30대~60대이다. 수학은 중학교 때 잘 공부해 두는 것이 중요하듯 이 시기의 소식 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 성장기 아이, 임산부, 환자에게는 당연히 득이 되지 않는다. 70세가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져 잘 드시고 살을 좀 찌우는 분이 더 오래 산다. 사람이 평생 먹을 양은 정해져 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비타민C 1000㎎를 먹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는 분들이 꽤 많다. 아직도 인터넷이나 유튜브 어디선가에서 열심히 선전하는 모양이다. 비타민C를 포함해 전 세계 항산화보조제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4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게 정말 소문대로 몸에 좋은 것일까?
생명체는 산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든다. 이 일을 세포 안의 화력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가 담당한다. 석탄을 태우면 유해 물질이 나오듯 세포의 산소 연소도 부산물을 만든다. 활성산소라 부르는 불안정한 '자유 라디칼'들이다. 쩍쩍 달라붙는 접착제같이 반응성이 높은 자유 라디칼은 생체에 중요한 분자를 산화 훼손한다. 그 결과 장기 손상과 노화가 일어난다.
이것을 밝힌 미국 의학자 데넘 하몬은 의사가 되기 전 정유회사에서 석유화학 물질의 자유 라디칼을 수년간 연구했던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하몬은 1950년대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자유 라디칼, 즉 활성산소의 축적에 의한 산화 스트레스라는 이론을 창안한다. 이 이론이 노화와 질병의 중요한 학설로 자리 잡고, 라이너스 폴링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항산화 물질로 산화 손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하자 즉시 제약회사들은 비타민C, 비타민E, 베타카로텐 등 많은 종류의 합성 항산화보조제들을 만들어 냈다. 항산화보조제는 최고의 노른자위 상품이 되었다.
1994년 뉴잉글랜드 의학지(NEJM)에 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항산화보조제 신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흡연자가 베타 카로텐을 많이 섭취하였더니 폐암 발병률이 오히려 올라간 것이다. 2000년대부터는 운동 후 항산화보조제를 복용하면 운동 효과가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연이어 나온다. 대규모 인간 연구에서는 비타민C와 셀레니움은 무용하고 베타 카로텐, 비타민A, 비타민E는 오히려 사망률을 올렸다는 결과가 나왔다. 동물장수실험에서는 산화손상을 줄여도 별 득이 없으며 놀랍게도 활성산소를 좀 늘린 동물의 수명이 더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최근 밝혀졌다. 알고 보니 생체가 소량의 활성산소를 방어의 신호전달물질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트레스로 발생한 소량의 활성산소가 체내 내장된 항산화 기전을 작동하고, 면역을 증강해 스트레스 내성을 올리는 방아쇠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고 농도에서 손상을 가져오는 활성산소가 저 농도에서는 신체를 회복시키고 노화를 지연한다는 말이다. 운동이나 파이토케미칼 등의 긍정적 효과도 활성산소의 자극 신호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항산화보조제는 오히려 이것을 상쇄시킨다.
비타민C의 경우 작년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 연구에서 혈청 수치가 너무 낮아도 사망률이 높지만, 너무 높아도 사망률이 높은, 이른바 'U'자형 위험이 확인되었다.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업계는 비타민C 1000mg 선전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런 보조제는 식약청의 규제 대상도 받지 않는다.
양식 있는 의사들은 심장병, 백내장 위험군이거나 질병 상태나 영양실조가 아닌 이상 항산화보조제 복용을 권하지 않는다. 비타민C의 하루 최소 권장량은 75~90㎎이지만 200㎎ 정도 드시길 추천하는데 중간 크기 오렌지나 귤 하나에 들어 있는 양이다. 채소나 과일을 충분히 드시면 다른 천연 항산화 성분과 함께 이 정도 양을 섭취할 수 있다. 게다가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파이토케미컬과 장 운동을 돕고 암을 예방하는 식이 섬유도 보너스이다. 그래도 합성 정제를 고집하신다면 하루 500㎎ 이상 용량은 피하시는 게 좋겠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글에서 식이 제한이나 운동 같은 약간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면 몸의 회복과 활력 촉진을 통해 수명 연장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했었다. '호르메시스(Hormesis)'는 비슷한 견지의 또 다른 이론이다. 약간의 독소가 생명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호르메~'는 그리스어로 '자극하다 또는 촉진하다'는 뜻인데, 호르몬이란 단어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19세기 말 휴고 슐츠라는 독일 약리학자는 소량의 독이 역설적으로 효모의 증식을 촉진하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대 독일 의사 루돌프 아른트도 동물에서도 같은 현상을 관찰하였다. 두 사람의 발견은 '모든 물질은 소량은 촉진하고, 중간량은 억제하고, 대량은 죽게 한다'는 '아른트-슐츠 법칙'을 만든다. 유해한 물질도 미세한 양은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치료약들은 미세량의 독이다. 약리학은 사실상 독을 다루는 학문이기도 하다.
호르메시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의 우주방사선 피폭 영향 조사 결과 발표가 계기가 되었다. 저선량 방사선 노출이 역설적으로 면역을 증강하고 노화를 억제한다는 예상치 못한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이후 여러 생명 연구 분야에서 호르메시스 현상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소식이나 간헐적 단식은 적당한 결핍으로 수명 연장 기전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종의 호르메시스 현상이다. 채소, 곡물, 견과류의 파이토케미컬이나 포도주의 폴리페놀도 적절한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해 신체의 활력을 되살린다. 한의학의 약초들도 짐작하건대 그런 효과일 것이다. 약간의 술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대표적 예는 운동이다. 운동은 근육을 늘이고 심폐기능을 좋게 하는 기능도 있지만, 적당한 산화 스트레스로 활력을 되살리고 몸을 보수해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도 있다. 지난 편에서 지나친 항산화보조제 섭취는 이 효과를 막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운동의 수명 연장 효과는 적당량일 때 나타난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좋지 않지만, 과한 것도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나 과하게 강렬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쳐 보이지만 통계에서 수명이 짧게 나타난다. 초장수인들은 철인경기나 마라톤으로 단련한 사람이 아니라 평소 맨손 체조하고 부지런히 걸어 다닌 사람들에서 나타난다.
호르메시스는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연구하는 유력한 개념이 틀림없지만, 민간요법이나 사이비 의학자들이 남용한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라돈 제품 효능을 합리화하거나, 원자력 발전소 유치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공포심을 누그러뜨리는데 방사선 호르메시스가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이나 원자력규제위원회 같은 권위 있는 어느 기관도 공식적으로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호르메시스는 삶의 한 측면과 같다. 안락 속에 머무는 것은 퇴보를 가져온다. 약간의 자극과 결핍과 불편함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조그만 경쟁심이 발전을 가져오고, 적당한 거리 둠이 결속을 강화한다. 약간의 가난이 가족을 더 화목하게 하고, 견딜 수 있는 궁핍이 정신을 벼린다. 세상의 어떤 부정적인 것들도 0은 10보다 못하고, 100은 독이 되지만, 10은 유익을 준다.
지나친 자극은 당신을 죽일 수 있지만, 자극이 없는 삶은 죽은 인생이다. 삶의 적절한 호르메시스는 인생을 풍부하게 하고 장수를 선물한다. 그것은 조그만 목표의 도전일 수도 있고 소박한 버킷 리스트일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조치가 하나씩 완화되고 일상으로 회복이 예고된다. 그렇다고 코로나19가 퇴치된 것은 아니다. 서로 타협하고 적응한 것에 가깝다. 말하자면 종전이 아니라 휴전인 셈이다.
감염병도 인간의 역사처럼 유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농업혁명에서 시작해 산업, 정보 혁명의 3번의 큰 물결을 겪은 것처럼, 감염병도 보조를 맞추듯 만 년 동안 4차례의 변혁을 겪었다. 그 결과 태초에 가내 수공업 같던 국지 감염병들이 오늘날 다국적 기업처럼 거대해져 전 세계를 유린하고 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구글이나 아마존보다 인류사에 영향을 덜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감염병의 연대기를 3회에 걸쳐 다루어 보겠다.
태초의 감염병은 간염과 헤르페스 바이러스이다. 이들은 아주 오랜 옛날 마이오세(Miocene) 유인원 조상 때 들어와 지금의 인간까지 전해져 온 '상속 감염'이다. 수백만 년 전부터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 꽤 적응이 잘 되어 있다. 대부분 조용히 잠복해 있다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발병한다. 비슷한 유인원 기원인 에이즈나 원숭이두창(앰폭스)이 이와 달리 굉장히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몸에 들어 온 지 한 세기도 안 된 신참자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감염은 수십만 년 전 인류가 사냥을 통해 다른 동물과 접촉하면서 시작한다. 도살하고, 가죽을 갈라낸 동물에서 촌충, 선모충 같은 기생충이 인간의 몸으로 기어 들어왔다. 오염된 동물과 그 땅에서 탄저병, 브루셀라, Q열, 야토병 같은 치명적인 균이 들어오기도 했다. 탄저균은 오늘날 테러 무기로 사용될 만큼 치명적이지만, 원래 집인 야생 동물 몸 안에서는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다. 이들이 인간의 몸에 들어왔을 때는 처음 적을 조우한 신병들처럼 마구잡이 공격을 한다. 인간의 몸이 두렵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숙주로 넘어가는 방법도 터득하지 못해 숙주가 죽으면 그것으로 함께 명을 다한다. 이 시대 감염병은 우발적 사고에 가까웠다
감염병이 첫 번째 도약을 한 것은 만 년 전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이다. 농경을 시작하자 가축으로부터 균들이 넘어오게 된다. 천연두와 홍역과 결핵이 소로부터, 인플루엔자가 오리와 돼지로부터, 백일해가 개와 돼지로부터 넘어오게 됐다. 가축과 인간은 함께 살기 때문에 이번에는 인간 몸에 적응할 시간이 생겼다. 게다가 농경 마을에는 50~200명의 사람이 모여 있어 사람과 사람을 넘어가는 기술도 터득해 나간다. 여기서 적응과 관용이 종의 운명을 가른다. 치명률과 전염성이 너무 강한 천연두는 기어코 인간에 의해 퇴치되었지만, 인간의 몸에 잠복하는 법을 배운 결핵균은 아직도 인간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감염이라는 생과 사가 걸린, 치열한 종 간 경쟁 속에도 타협과 적응이 일어나고 그것이 종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매서운 신종감염병이 4~6년 주기로 발생했다.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엔데믹(풍토병)으로 가게 된 건 코로나19가 처음이다. 신종감염병 중 최초로 인간 사회에 자리 잡은 셈이다. 최근 20년의 경험으로 볼 때 새로운 팬데믹을 일으킬 다음 신종감염병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8년 전 메르스가 종식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다음 것이 어떻게 나타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사회에서 완전히 비켜주지 않았고, 3년의 긴 시간이 우리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코로나19가 이런 부류의 신종감염병 중 당분간 마지막이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유인원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감염과 사냥감과의 접촉으로 얻은 감염, 그리고 농업혁명 후 가축에서 넘어온 결핵과 천연두 같은 전염병 이야기를 했다. 농업 사회 같은 조건에서는 병원균들이 독성을 줄이고 면역 관용을 얻어 인간과 균형을 이루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종의 존속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 적응하고 상주하게 된 '첫 번째 변화'였다.
병원균들의 가장 큰 숙제는 옮겨 갈 숙주를 찾는 것이다. 숙주가 죽기 전 다음 희생물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맹독한 에볼라가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한줌 주민들이 몰살하면서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농가 마을 규모의 거주지 병원균들은 적당히 착취하면서 다음 접촉자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새로운 국면이 나타난다. 도시가 생긴 것이다.
30만 명 이상 모여 사는 도시의 출현은 병원균들에게 잔칫상이 차려진 것과 같다. 조그만 마을에서 키워야 했던 절제와 인내는 맹렬한 탐욕으로 바뀐다. 장티푸스, 이질, 페스트 같은 놈들의 시대가 도래한다. 장티푸스와 같은 수인성 감염병은 숙주가 토사물이나 설사물을 배출하거나, 사체가 되어 퍼뜨려 주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페스트나 말라리아는 쥐벼룩이나 모기 같은 매개체가 옮겨 줘야 하는 데, 이 경우도 숙주를 무력화시켜 매개체들이 쉽게 접근하게 하는 게 낫다. 공격이 공존보다 유효한 것은 희생물의 수가 넘치기 때문이다. 문명과 도시의 출현은 전염병의 '두 번째 도약'을 촉발했다.
기원전 500년 전부터 기록에 전염병의 피해로 몰락한 나라나 도시의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그리스를 공격하던 중 이질로 몰락한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알 수 없는 괴질로 돌이킬 수 없이 국력을 손실한다. 로마는 두 번의 천연두와 홍역, 한 번의 페스트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는 불과 100년 전까지 장질부사(장티푸스)와 호열자(콜레라)가 횡행했다.
유목민들과 이슬람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네트워크가 건설되자 '세 번째 도약'이 나타난다. 제국의 시대는 저물고 도시는 더욱 커져 인구 밀집도가 더 늘어난다. 쥐와 이가 가정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짐에는 교역물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기원의 페스트와 발진티푸스 병원군들이 함께 실려 다닌다.
1331년 허베이 성에서 발생한 의문의 역병이 실크로드를 따라 흑해까지 흘러간다. 1347년 흑해의 무역항 카파에서 출발한 제노바 함대가 이 병으로 사망한 시신을 가지고 프랑스 마르세유에 입항한다. 역병은 유럽에 들끓던 쥐를 매개로 번져 나가 유럽에서만 2500만 명,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의 사망자를 낸다. 흑사병(페스트)이다. 대륙 간 네트워크를 타고 세상을 유린하는 신종 전염병이 처음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세계 인구를 반 토막 내고 인류의 악몽이 되었다. 이때 감소한 인구는 17세기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회복됐다. 그런데 흑사병 팬데믹으로 궤멸할 뻔한 유럽은 이를 계기로 완전히 변모한다. 흑사병으로 농노 제도와 중세 교회가 무너지자, 당시 세상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던 유럽은 중세의 암흑을 걷어내며 혁신의 길로 들어선다. 결과적으로 유럽이 주도한 16세기 대항해 시대와 18세기 산업혁명은 흑사병의 폐허 위에 건설된 셈이다. 21세기 신종 팬데믹에서 우린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20세기 동안 팬데믹이라 부를 만한 유행은 단 세 번 있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1948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이다.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새로운 감염병이 불과 20년 동안 4차례의 팬데믹을 일으켰다. 2003년 신종 인플루엔자를 시작으로 사스, 메르스, 그리고 이번 COVID-19까지, 5년에 한번 꼴로 일어났다. 왜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까?
COVID-19 발생 바로 한 해 전, 업무차 우한을 방문했었다. 2019년의 우한은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도시였다. 외곽의 국제공항에는 뉴욕, 밀라노, 파리, 런던에서 오는 직항기가 매시간 착륙하고 있었고, 도심 한가운데에는 네 다리 달린 것은 책상만 빼고, 날개 달린 것은 비행기만 뺀 온갖 희귀동물들이 식재료나 약재로 수집되어 사람들과 뒤섞인 재래시장이 있었다. 문자 그대로 문명과 야생이 뒤섞여 있는 도시였다. 이런 비슷한 도시가 1920년대 아프리카에 있었다. 킨샤사(Kinshasa)라는 곳이다.
콩고의 작은 촌락이었던 킨샤사는 벨기에령이 되면서 갑자기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 왔다. 철도와 도로와 대량의 인구가 유입되고, 매춘이 성행하고, 서양의료의 주사기 사용이 흔해진다. 그러자 수백 년 전부터 풍토병처럼 원주민 원숭이 사냥꾼들 몸에 숨어있던 원숭이 기원 바이러스가 갑자기 폭주하는 숙주들을 넘나들면서 형질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철도 이용객을 따라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에이즈의 기원이다. 문명과 야생이 갑자기 조우한 결과이다.
21세기 초까지 세계화와 경제 성장은 역사의 흐름이자 가야 할 길이라고 여겨졌다. 개발도상국가는 성장에 전력을 다했고 선진국의 대기업들은 생산 기지를 그곳으로 이전하였다. 우한과 같은 신생 도시들이 수년 사이 중국 깊은 곳과 동남아시아에 나타났고 아직 야생 생태 환경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지구 반대쪽 대형 도시들이 직항로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 다른 변화가 겹친다. 기후변화이다.
지구가 더워지자 열대 삼림지대가 점점 북상하여 미얀마, 라오스 경계를 넘어 중국 남부까지 올라왔다. 서식지가 북상하자 박쥐들도 따라온다. 박쥐는 온갖 바이러스의 매개체이다. 영미 합동 연구팀은 이 지역에 박쥐가 40종이 유입되고 박쥐 매개 바이러스가 100종 이상 늘어난 사실을 알아냈다. 지구온난화가 아시아 대륙의 정중심을 변종 바이러스의 '핫 스팟(hotspot)'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난개발되면서 빗장이 풀렸다.
서식지를 잃고 인간 거주지로 들어온 박쥐 바이러스는 사향고양이, 밍크, 천산갑, 너구리와 같은 매개체 몸에서 변종을 일으켜 인간의 몸에 침입할 능력을 획득한다. 그리고 곧 촘촘한 항공망을 통해 뉴욕, 밀라노, 런던, 서울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로 퍼져 나간다. 사스와 메르스와 COVID-19 등 신종 감염병의 창궐은 지구온난화와 항공기 여행이 가져온 감염병의 네 번째 도약의 결과이다.
역설적이게도 금세기 팬데믹은 중세 흑사병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행동을 바꾸어 놓았다. 세계화 신화가 무너지고 기업들은 속속 자국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비대면과 온라인의 세상이 열렸다. 전 지구 탄소 배출량도 감소하였다. 산업 혁명 이후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영원한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폭주에 제동을 건 것 같은 모양새이다. 마치 인간 만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려는 듯 말이다.

수만 년 동안 감염균과 인간은 투쟁과 타협을 거듭하며 공진화해 나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이 되자 전무후무한 상황이 일어난다. 인간이 유전자에 직접 손을 댈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전자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 파일 속 DNA 정보만으로도 생명체를 복원하거나 만들어내는 합성생물학 분야가 탄생하였다. 생명의 디지털 합성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세기 초입에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그 정체도 모른 채 희생자들과 함께 묻혔지만, 1997년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팀이 알래스카 동토층에 묻힌 시신의 폐에서 그것을 다시 꺼내 정체를 밝혀내고, 15년 후에는 실물로 복원해 냈다. 무려 95년이 지난 바이러스를 꺼내 되살린 것이다. 2002년에는 뉴욕주립대 연구진들이 유전자 정보만 가지고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조립해 냈다. 원본보다 독성은 약했지만 연구진들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충격에 빠졌다.
2011년에는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포유류에 공기 전염시킬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원래 바이러스는 종간 장벽이 있어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 넘어오지 않는데, 그 장벽을 인위적으로 허무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이 기술은 치료제나 백신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생물학적 무기나 사스, 메르스, 코로나 같은 팬데믹을 일으킬 병원균을 고의로, 또는 우발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미국 생물안보국가자문위원회(NSABB)는 두 연구가 실릴 <사이언스>와 <네이처>지에 일부 내용 삭제를 요청했다.
캐나다의 한 연구팀은 천연두의 친척뻘인 마두(馬痘, Horsepox) 바이러스를 통신 판매로 DNA 조각들을 사들여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나 '크리스퍼-캐스9' 같은 유전자 가위를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고, 해외의 바이오 해커 캠프에서 원하는 유전자 실험의 기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오늘날, 누군가 무모하게 천연두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위험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전체 게놈 정보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2016년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유명한 J. 크레이그 벤터의 연구팀이 완전히 새로운 인공 세균을 만들어 냈다. JCVI-syn3.0이라는 이름의 이 세균은 마치 자동차의 새시 프레임같이 무엇이든 탑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치료제나 탄소나 폐기물 처리 기능을 탑재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누군가 대량 살상 기능을 실을 수도 있으며 스스로 자연을 떠돌아다니다 예상치 못한 존재로 진화할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의 발전은 1977년 러시아와 중국에서 발생했던 '러시아 독감' 미스터리를 떠올린다. 유독 30대 이상에서는 걸리지 않는 현상 때문에 그 이유를 파고든 결과, 과학자들은 이것이 1950년 유행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완전히 같은 것이라는 걸 알아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얼마나 변이를 잘하는 지 고려하면 이 일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시 나타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실험실 보관 바이러스의 누출을 의심하였지만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공식 부인하였다.
만약 우리가 생물학적 실험에 대한 범국가적 규제와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면 근 미래에는 새로 출현한 감염균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 그것이 자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든 것인지 까지도 확인해야 할지 모른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우리는 이렇게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신이나 억겁의 세월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제 우리는 실험실에서 할 수 있게 됐다.

저나트륨혈증 고령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체내 염분이 떨어지는 이 증상을 최근 1~2년 사이에 의사 생활을 하면서 본 수보다 더 많이 본 것 같다. 고령화 사회의 여파이다. 노령이 되면서 신장의 농축 기능이 떨어진 데다 입 건조증으로 무의식 중에 물을 너무 많이 마시고, 이뇨제 같은 약을 복용하거나,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 염분 없는 수액을 공급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금이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만큼 실감한 적이 없다.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머니의 양수도, 우리 몸의 체액도 바닷물의 성분을 닮았다. 생명의 원천인 바닷물을 고스란히 우리 몸 안에 가져온 것이다. 인간은 200만년 이상 덥고 건조한 사바나에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인류의 선조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과제는 시시각각 땀으로 빠져나가는 염분과 수분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동물의 피와 암벽의 소금을 핥아 가며 생명을 유지한 수백만 년 동안 우리 몸에는 염분을 보유하는 시스템과 혈압을 유지하는 유전자들이 새겨졌다.
그런데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전 대륙으로 퍼지고 추운 위도로 올라가게 되자 이들은 쓸모가 없어진다. 소금을 생산해 내고 식탁 위에 절인 음식이 넘치기 시작하자 동물의 피를 핥아 근근이 염분을 유지하던 인간의 몸에 하루 12g이 넘는 소금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고마웠던 유전자들은 혈압을 올리고 혈관을 망치는 원흉이 되고, 금 같았던 소금은 독약 취급을 받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고혈압과 혈관질환을 막기 위해 소금을 절제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혈압학회 권장량은 하루 6g 이하이다. WHO는 5g, 미국심장학회는 3g 이하를 권장하니, 우리 기준은 소금을 많이 먹는 민족답게 넉넉한 편이다. 6g은 작은 찻숟가락 하나 정도인데 그것을 끼니마다 1/3로 나누어 써야 한다는 말이다. '병원 밥'하면 싱겁고 맛이 없어 원성의 대상이지만 이 기준에 맞춰 식사를 만들면 바로 그런 맛이 나온다.
이 정도 노력하면 혈압이 얼마나 떨어질까?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를 인용하면 하루 소금을 6g 줄이면 수축기/이완기 혈압이 2.2/0.1㎜Hg 떨어진다. 20대에 시작하면 50대에 9/4.5㎜Hg까지 낮출 수 있다. 뼈를 깎는 노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효과는 아니다. 그 이유를 일부 의학자들은 지금 권고치도 아직 높기 때문이라 본다. 하루 30개비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10개비로 줄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선사시대 먹던 양인 2g 이하로 낮추어야 하는데, 사실상 소금을 끊는 수준이다.
평균 수명이 80대를 훌쩍 넘어서자 노령층에서 먼 옛날 인류가 겪었던 문제가 다시 나타났다. 염분과 수분을 유지해 생존하는 문제 말이다. 평균 수명이 60대일 때 만들어진 건강 상식 중 고쳐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70~80대에 들어서면 살집도 좀 생겨야 하고, 단백질과 칼로리도 충분히 드시고, 염분도 모자라지 않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50~60대에 적용할 기준들을 80대에 적용하여 많은 고령 환자분들이 저나트륨혈증이나 근육감소증으로 고생하시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진솔한 팁 하나. 짜게 먹는 사람들에게는 소금양보다 중요한 숨겨진 문제가 있다. 짜게 먹는 사람은 싱겁게 먹는 사람보다 푸짐하고, 기름기와 칼로리가 과잉인 음식을 좋아한다. 짜게 먹는 사람이 비만과 대사 질환이 많은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다. 소금 계량기는 잊어버리고 채소와 미네랄, 식이 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소식 위주로 즐겁게 먹는 쪽으로 습관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고 쉽다. 70대가 넘어가면 거기에 계란도 하나 넣어야 한다.

재미있게도 '적당한(moderate) 음주'에는 공식 기준이 있다. 남성은 하루 2 표준 잔, 여성은 하루 1표준 잔 이내이다. 1표준 잔이란 맥주이던, 소주이던 해당 잔으로 1잔을 말한다. 위험한 음주도 기준이 있을까? 있다. 남성은 7잔, 여성은 5잔을, 일주일에 2번 이상 마시면 '고위험 음주'라 한다. 2시간 동안 단번에 남성이 5잔 이상, 여자는 4잔 이상 마셔버리면(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걸 '폭음'이라 부른다.
지나친 음주가 몸에 해로운 것에 대해 사족을 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적당한 음주가 몸에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의견이 갈린다. 적당한 음주가 몸에 좋다는 주장은 소량의 알코올이나 와인의 어떤 성분이 심근경색, 허혈성 뇌졸중 같은 혈관질환 발생을 낮추어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리를 잡았다. 믿을 만한 장수 연구 들에서도 장수인들이 예상과 달리 술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약간 즐기는 사람 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대규모 연구에서는 하루에 0.5~1.5잔 정도의 음주 구간이 90세 이상까지 도달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옹호론자들은 '건강한 성인에 한해' 여성은 하루에 한 잔, 남성은 하루에 두 잔까지 허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반대의 의견도 있다. 60만명을 추적한 영국의 연구에서는 심근경색증 같은 특정 심혈관 질환을 제외하고는 알코올이 심부전, 부정맥, 암 등 여러 병에 먹는 만큼 해롭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 알코올은 1급 발암 물질로 분류되어 있으며 하루 1~2잔만으로도 어떤 사람에게는 구강암, 식도암, 유방암, 간암, 대장암의 발생위험을 올린다. 그래서 강경한 의학자들은 소량의 음주도 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언젠가부터 보건복지부는 '술은 하루 2잔 이내'에서 '암 예방을 위하여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로 슬쩍 한걸음 물러났다.
적당한 음주의 이득은 대부분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이다. 범위를 후진국까지 확대하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음주의 폐해는 문화적 문제와 겹쳐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때 '술 많이 먹으면 간이 나빠 죽는다'는 엄포가 필요했던 우리나라가 술 문화의 후진국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만의 독특한 문제가 아직 하나 남아 있다. 안주 문제이다.
치맥이 K-컬쳐의 아이콘으로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매일 밤 100만 마리 넘게 튀겨지고 있는 치킨에는 트랜스 지방과 탄수화물에 열량이 상당히 많다. 여기에 설탕 양념을 바르고 맥주의 열량이 더해지면 비만, 대사증후군, 고지혈증, 동맥경화증은 쉽사리 온다. 그런 상황이 하나 더 있다. 소주에 삼겹살이다. 진료실에서 마주 앉은 청장년들의 검사 수치를 보면서 안 보이게 한숨을 지으면 환자들은 눈치를 채고 '어제 U20 월드컵을 보면서 치맥을 먹는 바람에…“라고 머리를 긁는다. “간경화증 올까요?” 글쎄… 간경화증은 일주일에 50잔 이상 마셔줘야 나타난다. 그보다는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다시 주저앉아 기름기와 고칼로리를 계속 입안에 집어넣는 습관 때문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먼저 올 것 같다.
세상에는 수많은 건강 팁이 있지만 한 영양학자가 영국의학저널에 기고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5가지 생활 습관'이 가장 근본적이고 명쾌하다. '금연하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며,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하루에 30분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술은 5가지 변수 중 하나이다. 적당한 음주란 '치킨과 삼겹살 없이 간단히 마시는 1~2잔'이다. 오래 살려면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봐야 한다. 좋은 숲을 가꾸는 것이 백세 장수인 들에서 한결같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킬러문항이 뜨거운 뉴스거리다. 수능에서 나오는 웬만해선 풀 수 없는, 예를 들면 BIS 비율을 모르면 못 푸는 국어 문제나 미국 사람도 수학 못 하면 풀기 어려운 영어 문제 같은 것이다. 이런 이상한 문항이 나타난 이유는 수능에서 변별이 굉장히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쪽은 킬러문항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더 나가 출산율까지 떨어뜨린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방사능 오염수도 고통스러운데 이거 웬 탄압이냐며 난리이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멍드는 것은 수험생들이다.
아주 오래전, 사람의 생존을 변별하는 것은 먹을 것을 구하는 능력이었다. 수렵채집 시대 한 가족의 생존은 가장의 사냥 능력에 달려 있었다. 농경에 의존하면서 흉작으로 인한 아사라는 위험에 노출되자, 이번에는 밖으로는 곳간, 안으로는 체내 지방에 영양을 재어 놓는 능력이 생존을 좌우했다. 오늘날 쉽게 비만해지고 당뇨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그때는 생존에 유리한 자질이었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밀접하게 살면서 생존을 변별한 것은 감염병을 피하거나 이겨내는 능력이었다. 이것도 항생제가 발명되면서 변별력을 잃었다.
1950년대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갑자기 40대 이하로 떨어진 적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인구의 5분의 1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에 태어나느냐는 어느 해 수능을 보느냐처럼 중요한 문제이다. 사는 나라의 경제 수준도 수명의 변별력이 된다. 유엔 통계를 보면 국민소득이 100달러에서 1만 달러가 될 때까지 수명이 40세에서 70세까지 일직선으로 증가한다. 수명 3년 늘리는데 국민소득 1000달러가 필요한 셈이다. 후진국에서 금연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풍요로운 나라에서 태어나 묻혀 가는 것이 유리하다. 학부모들이 기를 쓰고 강남학군으로 이사 가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20세기 생존의 변별력은 고혈압, 비만, 당뇨병으로 바뀌었다. 그 합병증인 심뇌혈관질환이 가장 큰 변별력을 차지했다. 그런데 탁월한 약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변별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타의나 자의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불행히 유전적으로 합병증에 취약한 사람들이다. 학원이 넘치고 일류 강사들이 활약하는 세상에서 학원에 안 가는 아이들만 대학 가기 힘들게 된 것과 같다.
20세기 말부터 암이 마지막 킬러문항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것마저 조기 검진이 자리 잡고 표적치료, 면역치료, 중입자치료 등 많은 선택지로 완치 가능성이 올라가면서, 이전 만큼 큰 변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요즘은 암 진단을 받아도 10명 중 7명 가까이 생존한다. 2020년 통계를 보면 암 진단받고 5년 이상 생존해 삶을 누리는 사람이 137만명이다. '암생존자'라 불리는 이들은 그저 다양한 인구 집단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암에 걸린 사람이 완치될 가능성이 시골 학생이 소위 서울의 명문대에 갈 가능성보다 훨씬 더 높다.
경제 수준이 높고 양질의 기본 의료가 제공되고 있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수명의 킬러문항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남은 것은 개인의 건강 관리 능력이다. 평소 얼마나 자기 관리를 잘하나, 의료혜택을 잘 이용하느냐, 검진을 충실히 받느냐가 수명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변별력이 되었다. 내신만 잘 관리하면 모두 다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 걸 보면 의료 문제가 어렵다 해도 입시 문제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언젠가 병실의 할머니가 TV 뉴스를 보시면서 한 말씀 하셨다. “저 어린 것들이 힘들지, 우린 아무것도 아녀…” 반짝반짝 빛나야 할 어린 시절이 질병투성이의 노년보다 더 힘든 나라가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비싼 돈을 지불하며 헬스클럽을 다니고 기를 쓰고 다이어트를 한다. 비만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매력을 떨어뜨리고 의학적으로도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다이어트를 하고 남성들은 죽지 않으려고 다이어트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그 이유는 수백만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 오래전, 대략 600만년 전이다. 이때까지 인류의 선조의 선조들은 숲 속 나무 위를 건너다니며 열매와 줄기를 먹고 온종일 이것을 소화시키기 위해 빈둥거리며 살았다. 미오세 기후 변화로 숲이 사라지자 갑자기 운명이 달라졌다. 덥고 건조한 사바나 지형에 버려져 두발 보행을 시작한 선조의 삶은 고단해졌다. 강한 이빨도 빠른 다리도 없어 처음에는 버려진 짐승의 사체로 연명하는 스캐빈저가 되었다가, 점점 뜨거운 햇볕 아래 먹잇감을 몇 시간을 몰아 일사병으로 쓰러뜨리는 장거리 사냥꾼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수백만 년 수렵채집 시대 동안 인간의 선조들은 하루 10㎞ 이상 이동하고 한번 먹이를 쫓을 때 3~6시간을 달리는 지구력 주자로 살았다. 그 결과 식욕과 육신은 높은 에너지를 섭취하고 소모하도록 맞추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십 킬로를 돌아다녀도 쫄쫄 굶는 날들이 수백만 년 반복되자, 한번 영양분이 들어오면 몸 안의 저장고, 간과 지방 속에 잔뜩 재어 놓는 유전자가 선택되었다. 영양분이 빠지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칼로리의 소모를 대폭 줄이는 장치도 장착된다. 일중독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 몸은 엄청나게 먹고 잔뜩 재어 놓는 것은 매우 잘하지만, 필요 없을 때 덜 먹고 덜 재우는 것은 굉장히 못 하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는 식욕을 제어하기 어렵고 살찌기 쉬운 몸을 물려받은 것이다.
모든 상황이 역전된 것은 겨우 100년 전부터 이다. 동력기관이 대신 힘을 써 주고 운송 기관이 가만히 있어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주게 되었다. 냉장고에는 고탄수화물 고지방 음식이 넘치고 손 닿는 곳에 고열량의 간식이 널리기 시작했다. 먹기 위해 하는 일은 일어나 부엌으로 가는 정도가 되었다. 간혹 식료품을 사러 마트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동차로 간다. 먹거리의 양과 활동량이 역전되어 먹거리를 구하는 데 사용하는 칼로리가 구석기 대비 5분의 1로 줄었다. 지금도 아프리카 어딘 가에 우리 형제 종인 침팬지들은 하루 2~3㎞ 이상 걷지 않고 대부분 시간을 빈둥거리며 사는데 우리 삶이 그것과 비슷하게 되었다.
운동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꼼짝하기 싫어하는 본능이 수백만 년 동안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오래 달리면 엔도르핀이 뿜어져 기분이 좋아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같은 장치는 역설적으로 본능을 뒤집어 보려는 미끼이다.
운동보다 더 힘든 것은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다. 먹다가 수저를 놓는 것은 쏟아지는 잠을 참는 것이나 새벽 일찍 대청봉을 오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힘든 것은 수백만 년 동안 새겨진 본성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를 쓰며 다이어트를 하고 비싼 돈을 지불하며 헬스클럽에 등록하게 된 것이다.

대략 20년 전 필자의 초임 시절, 대학병원 내과를 처음 방문하는 환자들의 연령은 주로 30~40대였다. 그 시대에는 건강 문제들이 그 나이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대학병원 초진 환자들은 50대와 그 이후가 많다. 내과 질환과 그 합병증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10~20년 미루어진 것이다. 그 사이에 평균 수명은 70대 초반에서 80대 중반으로 늘어났다. 삶의 길이가 20년 가까이 길어진 것이다.
노령화 사회 연구의 대가인 런던경영대학 린다 그래튼 교수는 은퇴하고도 20~30년을 더 사는 세상이 되었으니 짧은 수명 시대에 만들어진 '교육-직업-은퇴'의 고정 사고는 버리라고 설파한다. 평생 2~3번 직업을 바꾸고 그것을 위해 다시 공부하는 '다단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도 마찬가지이다. 60대가 80대를 대비해야 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건강관리도 단계별로 나누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래전, 수명이 40~50대에 불과했던 시대에 먹거나 몸을 단련하는 것은 남보다 강건해지기 위한 것이었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자손을 남기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 목표였다. 장수는 그저 운이었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것은 삶이 풍요로워지고, 폭식과 운동부족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가 되어서야 나타난 개념이다.
감염, 전쟁, 아사의 위협이 사라져 평균 수명이 보장되었지만, 당뇨, 고혈압, 심뇌혈관질환 등이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하자 인간의 목표는 무사히 70대에 진입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를 위해 타고난 본능을 억제해 식사량을 조절하고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미리 시작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독서를 하고 중학교 때 수학의 기초를 닦아야 대학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 것과 같다. 30대부터 체중 조절을 잘하고 40대부터 유산소 운동의 습관을 만들어 둔 사람은 60대까지 심뇌혈관질환의 발생이 현저히 낮아지고, 설령 심근경색 같은 것이 발생해도 생존 확률이 높다.
그런데 막상 60대에 도달하니 언젠가부터 이곳이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가 되었다. 쉬며 삶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아니라 아직도 살아 계신 부모를 돌보면서 자신의 80대도 준비해야 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심뇌혈관의 질풍노도는 지나갔지만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과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노화로 점점 모습으로 드러내는 암을 제때 발견해내는 것이다. 이 연령이 되면 암은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니터링해서 제때 잡아내야 하는 것이 된다.
다른 하나는 삶을 지탱할 근력, 즉 '기동성'의 확보이다. 새로운 60대는 그 옛날 선사시대 젊은이들처럼 빠른 다리와 강한 완력을 가지는 데 노력해야 한다. 과격한 운동을 줄여 관절 마모를 줄이고, 유산소에서 근력 운동으로 비중을 옮기고, 근육량과 골밀도를 늘여야 한다. 고기와 적당한 염분도 섭취하고 지방도 조금 재어 놓아야 한다. 새로운 국면에 새로운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60세 인생 시대에 만들어진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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