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년전 그날, 부산 서면에서 여우같던 그 여자가
첨 만난 그 남자한테 집까지 바래다 달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니들은 없다.
그날밤 으쓱한 부암동 골목길 전봇대에 실례를 하더라도
그 남자의 교양이나 인성을 의심하지 않겠다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니들은 없다.
눈이 나빠서 랜즈 꼈다고 자기 눈동자를 잘 쳐다보라 안했다면
거기에 속아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말똥 말똥한 눈망울을 자세히 안봤다면
지금 니들은 이 지구상에 없다.
첫 데이트로 태종대 가던날, 나란히 앉으려고 버스 맨 뒷자리에 먼저 앉았더니
그 앞자리에 혼자 앉아버려, 뒷좌석에서 그 여자 뒤통수만 멀뚱히 쳐다보지 않았다면
오늘 니들은 지구 어디에도 존재 할 수 없다.
태종대에서, 팔짱껴도 되겠냐길래 왠떡이냐 좋아서 팔을 내밀었더니
혼자 셀프 팔짱을 껴서 그 남자를 당황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니들은 없다.
바람이 거세던 그 봄날, 그 조그만 여자가 마지막 잎새처럼 팔랑거리다
태종대 바닷바람에 그날, 날아가 버렸다면
니들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기차타고 각자 고향집으로 가던날, 먼저 밀양역에 내린 그 여자가
대구가는 기차안 창가 그 남자에게 미친 여자처럼 마구 손흔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남자가 차안에서 남보기가 너무나 부끄럽지 않았다면
지금 니들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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