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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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피천득 선생의 삶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몸맵시 날렵한 여인”

자신의 글처럼 맑고 순수하고 단아한 일생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저릿해한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의 마지막 부분이다. 젊은 날의 금아와 일본인 소녀 아사코의 만남과 헤어짐의 추억을 잔잔하게 묘사한 이 수필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25일 별세한 금아는 한국 근대 수필의 기초를 세우고 독자적인 미감을 만들어낸 수필 문학의 선구자였다. 자신의 글 ‘수필’에서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한 금아. 실제로 그의 글은 맑고 담백하면서도 향기로웠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영문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금아의 글에는 의고체나 번역 문투가 보이지 않았다.

금아는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 교내 문예지를 만들면서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글 솜씨를 눈여겨본 춘원 이광수의 권유로 16세 때인 1926년 중국 유학길에 올라 후장(호江)대를 졸업했다. 1930년 동아일보사가 발간하던 월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해 등단한 금아는 이후 문예지와 일간지 등에 시와 수필을 발표했다.

그의 수필 주제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애정 그 자체였다. 음악과 차, 꽃, 산책 등 평범한 일상이 금아의 글에 옮겨지면 소중하고 가치 있는 대상으로 격을 얻었다. 그래서 금아의 글은 평이한 듯 보이지만 읽고 나면 독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운을 남긴다. 그는 “정말로 잘된 글이어야 보는 사람이 기쁘고 쓴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며 작품에 대한 엄격함을 잃지 않았다. 엄격한 정련을 거쳐 세상에 나온 그의 언어는 한국적 수필 문학의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

금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수필 창작을 멈추고 이따금 시를 쓰는 것으로 창작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는 종종 ‘늙으면 술을 마시든지 침묵하라’는 서양 격언을 인용하면서 “했던 말을 또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말은 다 썼고, 한계도 여기까지다”라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1993년 시집 ‘생명’을 세상에 내놓았고, ‘세상사에 달관한 노인의 정갈하고 소년 같은 시심을 보여 준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집을 발간한 공적으로 금아는 1995년 인촌상을 수상했다.

막내이자 외동딸인 서영 씨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유별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수필 ‘서영이’에서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 ‘나에게 글 쓰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라며 큰 애정을 표시했다. 결혼 전날 눈물을 그치지 않는 서영 씨를 보다 못해 금아가 결혼식 참석을 포기한 일은 유명하다. 서영 씨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물리학자 로만 재키 씨와 결혼해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금아는 생애 내내 밝고 천진했다.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지내 환갑 넘은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 서영 씨가 갖고 놀았다는 인형 ‘난영’이를 밤마다 데리고 잤다. 잉그리드 버그먼을 ‘마지막 애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해서, 흠모하는 작가인 바이런, 셸리, 예이츠 사진과 함께 걸어 놓았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 시절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최근까지도 금아를 찾아가 함께 점심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올 2월에는 출판인 모임인 은석회의 초청으로 출판계 최고령자인 을유문화사 정진숙(94) 사장 등 출판인들과 만나 우리 시대 책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1939년 결혼해 해로해 온 아내가 6년여 치매로 고생해 왔지만 금아는 속상해하기보다 아내가 점잖게 치매 증세를 보이는 데 감사했다. 그만큼 선하고 순수했다.

소년처럼 순수했던 금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담백한 글과 함께 단아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저세상으로 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지인들이 회고한 피천득 옹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선생님 생일을 맞아 말린 꽃으로 장식한 '꽃 카드'를 댁으로 보냈는데, 그걸 못받고 돌아가시다니…. 하지만 선생님은 당신이 '오월'이라는 글에 쓴 것처럼 오월 속에 계실 것으로 믿어요."(이해인 수녀)

"선생님은 나이 칠십이 넘으면 글에 욕심이 들어간다고 글을 안 쓰셨지요. 왜 글 쓰는 분들은 아기 같다는 말이 있잖아요. 참 순수한 분이셨어요."(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25일 오후 11시40분 피천득 옹의 별세 소식을 전해들은 지인들은 고인이 98세 생일을 맞는 29일을 코앞에 두고 떠난 것을 아쉬워했다.

1910년 5월29일에 태어난 고인은 '오월'이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5월을 좋아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중략)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오월' 중)

이해인 수녀는 "선생님은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다'란 말을 여러 번 하셨고, 스스로 명예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다"며 "서울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할 수 있었는데도 몇 년 앞당겨 그만둔 것은 그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돌아봤다.

이어 "가톨릭 영세를 받고도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고, 사회봉사를 하지 못했다며 부끄러워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는 아버지와 고인의 인연을 회고했다. 장 교수의 아버지인 장왕록 박사는 고인이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시절, 그의 제자였다.

장 교수는 "제자를 참 아껴준 스승이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신년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고인과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재순 '샘터' 고문이다.

두 사람은 30년 넘게 해마다 첫눈 오는 날, 서로 먼저 전화해 안부를 물을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인에게 세배를 가기 시작한 김성구 샘터 사장 역시 매달 한 번씩 고인과 목욕탕에 가는 일을 얼마 전까지 계속해온 돈독한 관계이다.

고인과 알고 지내던 문인들은 고인을 순수한 아이 또는 소년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전생의 업도 없고 이승의 인연도 없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하늘나라의 아이"라고 표현했다.

고인의 미수(米壽) 잔치에 참가했던 박완서씨는 "'사람이 저렇게도 늙을 수가 있구나'하고 그분의 늙음을 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며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늙음을 추잡하게 만드는데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난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jsk@yna.co.kr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
기사입력 2005-05-13 14:51 |최종수정2005-05-13 14:51

영원히 늙지 않는 ‘5월의 소년’… 내일의 걱정보다 오늘의 행복함에 감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이 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은 스물한살 청년이 아니라 아흔여섯살의 피천득 선생이다. 항상 아기같이 순박한 마음, 외동딸을 너무 사랑해 글마다 절절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사랑, 평생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 지금도 제자들과 만나는 피천득선생은 5월의 상징 같다.

피천득선생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대부분 “어머, 그분이 아직 살아 계셔요?”라며 놀랐다. 30~40여년 전 교과서에서 본, 일본여성 아사코와의 만남을 담은 ‘인연’이란 수필의 필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 신기한가보다.

선생은 그저 살아계시는 것이 아니라 5월의 신록처럼 싱싱하게 영원한 청춘을 구가하고 있었다. 어린이날, 중국 상하이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선생은 피곤함은 전혀 모르는 듯 천진난만하고 꿈꾸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상하이는 70년 만에 다시 간 거예요. 아는 이의 초대를 받아 한 닷새 머물다 왔죠. 완전히 유럽같이 변했더군요. 내가 70년 전에 그곳에서 만나 좋아했던 메리 루(몇번이나 물어서야 이름을 들었다)라는 중국여성을 찾아 만나보고 싶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주소지엔 살지를 않더군요. 여자들은 남자보다 오래 사니까 꼭 살아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혹시 불로초나 노화방지약이라도 있나 싶어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그 흔한 비타민병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흔여섯이란 나이도 그렇지만 그 연세에 꼿꼿한 자세는 물론 흰머리도 많지 않고 귀도 밝다는 것이 경이롭다.

“글쎄 건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요. 아마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별로 욕심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건강비결인 것 같아요.”

서울 반포동 32평 아파트는 ‘욕심없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작가이면서도 책이 별로 없다.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은 영구 무상임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화첩이나 달력에서 잘라낸 듯한 르누아르의 그림은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두었다. 침대 역시 1인용 간이침대. 동네를 지나가다 누가 버린 것을 가져왔다는 식탁과 의자 역시 짝이 맞지 않는다. 그 흔한 소파도 없고 첨단 가전제품도 하나 없다. 아흔여섯인 당신이 젊은 시절에 헌책방에서 샀으니 족히 100년은 넘었으리라는 낡은 책, 좋아하는 작가와 음악가의 사진들, 가족과 손주들 사진뿐이다. 그나마 쿵쿵 소리로 옆집에 피해를 주기 싫어 못 박아 액자를 걸지 않고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거나 바닥에 세워두었다. 이런 검박한 풍경 속에서 그는 오히려 황제처럼 풍요로워 보인다.

“부자는 돈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지요. 파리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세운 것이지만 그의 것이 아니라 그곳을 거니는 연인들 것이거든요. 꼭 좋은 그림을 소유해야 행복한 것도 아니죠. 기억 속에 넣어두면 됩니다. 좋은 기억은 욕심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식사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주로 채식을 하며 소식을 한다. ‘아침은 혼자, 점심은 친구와, 저녁은 적과 함께 먹듯 하라’는 서양속담을 지키면 된단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침은 거르고 저녁만 푸짐하게 그것도 1차, 2차 술자리까지 이어지니 배도 나오고 건강도 나빠진다고 걱정했다.

영원한 어린아이

작가 최인호씨는 피천득선생을 ‘전생의 업도 없고 이승의 인연도 없는, 한번도 태어나지 않은 하늘나라의 아이’라고 표현했다. 선생이 환하게 웃을 때는 개구쟁이 소년이 즐거워하며 미소짓는 것 같다. 꾸미지 않는 순수함과 어린아이다움이 그의 또다른 건강비결이다.

그는 아이처럼 수시로 웃고 기뻐하고 감탄한다.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내내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지내 환갑 넘은 제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보통 나이든 남자들이라면 유치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도 즐겁게 한다. 딸 서영씨가 어릴 때 갖고 놀았다는 인형 난영이는 쉰살이 넘었는데 여전히 소녀의 모습으로 선생의 침실에서 함께 잠을 잔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시키고 예쁜 핀으로 머리를 묶어주고 밤마다 눈을 감겨 재우고 아침엔 깨워준다. 선물받았다는 곰 인형 세마리도 그의 침실을 지키는 친구들이다. 누우면 눈을 감는 인형 난영이와 달리 곰인형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 그래서 밤마다 선생이 눈가리개를 씌워 편안하게 재운다. 선생의 집을 방문한 날, 난영이는 일어나 앉아 있었지만 곰인형들은 여전히 안대를 하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인형놀이를 하며 즐거워할 성인 남성이 몇이나 될까.

선생에게 사랑받는 여성이 또 있다. ‘마지막 애인’이라고 부르는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이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갓 데뷔한 시절의 청초한 사진과 전성기의 원숙한 사진 2장이 선생이 흠모하는 작가들 바이런, 셸리, 예이츠 등의 사진과 함께 있다.

“날 사귄(?) 덕분에 저런 훌륭한 이들과 항상 함께 있으니 잉그리드 버그먼은 호강하는 거야. 아무리 유명하고 예쁜 배우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는데 난 수십년간 변함 없이 저 사진을 간직하고 매일 보고 생각하거든. 잉그리드 버그먼도 행복할 거야.”

선생의 시 구절이나 수필의 문장을 기억해서 말씀드리면 칭찬받은 꼬마 아이처럼 “아이, 고맙습니다”라고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교제관계도 아이 같다. 청탁성 등 이해관계나 명함에 적힌 직함으로 누굴 만나지 않는다. 그저 함께 해서 즐겁고 기쁘다면 그 누구와도 만난다. 국회의장을 지낸 샘터사 발행인 김재순선생과는 첫눈이 내리는 날, 서로 전화해서 알려주는 사이. 30년 전 아버지를 따라 세배왔다가 인연을 맺은 김재순선생의 막내아들 성구씨(샘터 사장)와는 한달에 한번 정도 목욕탕에서 만나 등 밀어주는 사이. 그리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 시절의 제자들은 칠순이 넘은 후에도 여전히 선생을 찾아오거나 초대해 점심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살고 싶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선생은 예전에 당신이 쓴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란 글과 똑같이 점잖게, 그러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늙어가고 있다.

“사람이 저렇게도 늙을 수가 있구나 하고 그분의 늙음을 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나이들수록 자신의 말년에 대한 근심은 더해만 간다. 마땅한 본을 보여줄 늙음의 선배가 귀하기 때문이다….

연세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도 늙음을 추잡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난 그분은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무구하고 신선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것들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선생의 미수연과 구순잔치에 참석했던 작가 박완서씨의 회고담이다. 그는 이렇게 후배들에게 ‘저렇게 잘 늙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준다. 정작 그는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못느낀다고 했다. 나이 때문에 못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체질상 술, 담배는 평생 하지 않았고 운동도 산책이 전부인데 지금도 동네나 서울대 캠퍼스 등을 산책한다. 예전에 읽던 책을 다시 읽고 브람스 등 클래식 음악을 듣고 제자 등 친지들을 만나 데이트를 하는 생활은 ‘강의’만 빼고는 교수시절과 별반 다름이 없다. 오월의 신록을 보는 황홀함도 청년시절과 별 차이가 없고 지금도 예쁜 여자를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것은 아니지만 보석을 발견한 듯 기쁘고 행복하다. 선생의 오감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억울한 것도 없고 딱히 남의 가슴 아프게 한 일도 없고…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내 삶과 똑같은 생을 살고 싶어요. 공부하고 가르치고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글로 남기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그것도 참 염치없는 짓이지만….”

늙었다는 생각도 안하고 항상 소년 같은 마음이지만 선생 역시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5년 전 치매에 걸린 부인을 볼 때면 걱정스럽기도 하고 자신 역시 ‘잠자듯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이 가장 커다란 소망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일의 걱정보다 당장 오늘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평화로운 삶을 유지한다. 당신조차 못 알아보는 치매 부인 때문에 속상해하기보다 도통한 듯 점잖게 치매 증세를 보이는 것에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격한다.

“여름방학엔 우리 딸 서영이가 와요. 서울대에 강의하러 온다고 했어. 절대 결혼하지 않을 줄 알았더니 결혼도 하고, 애도 안 낳을 줄 알았는데 그 아들이 아주 실력있는 바리올리니스트야. 그런데도 하버드 대학에 다녀요. 미국도 하버드 병에 걸렸나봐. 서영이가 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녀야죠.”

어릴 때 그렇게나 편애하고 애지중지해서 조금만 아파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딸 서영씨는 올해 환갑이다. 환갑인 딸을 기다리는 선생의 표정은 10대 소년 같다.

5월 29일은 선생의 생일. 라일락 향기, 사향장미의 붉은 빛깔, 푸르디푸른 하늘, 초록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뭇잎들… 올해로 아흔여섯번의 5월을 맞는 피천득선생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보였다. 그의 해맑은 얼굴 위로 선생이 쓴 오월이란 글이 겹쳐졌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백살이건 백스무살이건, 그 계절이 언제건 피천득 선생은 영원한 오월의 소년이다. 너무 사랑스러워 볼이라도 만져주고 싶은….

<글/유인경편집장 alice@kyunghyang.com >

<사진/김석구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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