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전체 478건, 10 / 24 pages
NAME   조상현
SUBJECT   나무 백일홍

한자명 목백일홍(木百日紅), 자미(紫薇) 지방명 간지럼나무, 백일홍나무, 백일홍낭(제주)
영 명 Crape-myrtle, Indian lilac 학 명 Lagerstroemia indica L. 꽃말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으로도 불리고 자미화로도 불린다. 나무줄기의 매끄러움때문에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대갓집 안채에는 금기시되는 수목이다. 그런 배롱나무지만 절마당이나 선비들이 기거하는 곳의 앞마당에는 많이 심었다니 그또한 아이러니다. 절마당에 많이 심는것은 배롱나무가 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스님들 또한 세속을 벗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이고 선비들의 기거처 앞에 심는 것은 청렴을 상징하는 때문이라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 되는 배롱나무꽃의 슬픈 전설만 기억에 담아놓는다

배롱나무의 전설 옛날 어느 어촌에 목이 세개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매년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받아 갔습니다. 그 해에 한 장사가 나타나서 제물로 선정된 처녀대신 그녀의 옷을 갈아 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이무기의 목 두개를 베었습니다.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죽을때까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하자 "아직은 이르오..아직 이무기의 남아 있는 목 하나 마저 더 베어야 하오. 내가 성공하면 흰 깃발을 달고, 내가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 것이니 그리 아시오." 처녀는 백일간 기도를 드렸습니다. 백일후 멀리 배가 오는것을 보니 붉은 깃발이 걸려 오는것을 보고 그만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장사는 이무기가 죽을때 뿜은 붉은 피가 깃발에 묻은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후 처녀의 무덤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 났는데 그 꽃이 백일간 기도를 들인 정성의꽃,백일홍입니다.

남도 땅에 배롱나무 붉은 꽃이 폭죽처럼 터졌습니다. 붉은 꽃잎이 선혈처럼 낭자합니다. 배롱나무가 아름답기로는 전남 담양의 명옥헌 원림(園林·집터에 딸린 숲)이 단연 최고지요. 운치있게 지어진 정자 아래 연못 둘레로 심어진 배롱나무도 좋지만, 연못에 띄워놓은 작은 섬에 가지를 뻗고 선 아름드리 배롱나무는 지금 불이 붙은 듯 붉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꽃이 피어 있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꽃이 다 질 무렵이면 추수가 시작된다네요. 명옥헌 누정마루에 걸터앉아 만발한 꽃을 바라보던 한 노인은 “없이 살았던 시절,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저 꽃이 다 지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달랬다고 해서 ‘쌀나무’라고도 부른다”고 했습니다. 배곯던 아이는 아마도 좀처럼 꽃이 지지 않는 쌀나무가 야속했지 싶습니다. 꽃잎을 떨구면 새 꽃잎이 돋아 세 번씩 다시 피어 여름 내내 피어오르기 때문입니다.

담양 땅에는 도처에 배롱나무입니다. 담양에서 창평으로 가는 887번 지방도로는 배롱나무들이 열병식을 하듯 늘어서 있습니다. 남도 땅의 배롱나무는 유독 꽃이 붉은 듯합니다. 소쇄원에도, 송강정에도, 독수정 원림에도, 환벽당에도….

담양의 수많은 정자 주변으로는 배롱나무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반들반들한 수피에 붉고 화려한 꽃잎이 수수하고 소박한 정자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습니다.

여름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배롱나무 붉은 꽃그늘을 밟으며 담양 땅으로 향하는 여정은 어떠신지요. 잘 알려진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어도 좋고, 울울창창한 대나무숲의 서걱거리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도 좋겠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소쇄소쇄 부는 소쇄원의 짙은 이끼로 가득한 옛 정원도,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도 빼놓으면 아쉬울 곳들이지요.

여기다가 산자락을 부드럽게 곡선으로 켜켜이 돌을 쌓아올린 금성산성과 조선 선조때 10년 넘게 일기를 써왔다는 미암일기가 남아있는 모현관을 보탭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합죽선을 소리나게 착 펴서 들고, 슬슬 바람을 부쳐가면서 물러가는 여름날에 정자에 올라 배롱나무꽃 구경을 떠나보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러다 출출해지면, 덕인관의 떡갈비도 좋겠고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면의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질박한 창평국밥 한그릇도 좋겠습니다. 밤이면 스티로폼 상자를 메고 다니며 목청껏 외치는 떡장수를 불러 망개떡의 진한 망개나무 잎사귀 향을 음미해보는 것도 빼놓지 마시길….

이제 곧 여름도 다 가고 배롱나무도 하나둘 꽃잎을 떨구겠지요. 담양 정자문화의 원류로 꼽히는 면앙정을 짓고 풍류를 읊었던 송순이 지은 한시 ‘석춘가’의 한 대목을 읊어봅니다. “꽃이 진다고 새들아 슬퍼 마라. 바람에 날리니 꽃의 탓이 아니로다….” 을사사화때 추풍낙엽처럼 목이 떨어지던 올곧은 선비들을 기리며 지은 이 한시는 지금 되짚어 읽어도 새록새록합니다.

담양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 munhwa.com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슴하리요

희짓는 : 휘젓는, 희롱하는. 새와 : 시기하여.

새들아, 꽃이 저 앉을 자리가 없다하여 너무 슬퍼 말라.
모진 바람이 꽃을 떨어뜨리는 것이니 꽃에 무슨 죄가 있으랴.
떠나간다고 휘젓는 봄을 시기하여 무엇하겠는가.

여기서 꽃이라는 말과 새들이란 명사, 그리고 바람, 봄이라는 어휘들이 지니는 은유(隱諭)의 그림자에 눈을 돌려야 만이 이 작품이 갖는 참 뜻과 그 실마리를 찾아 낼 수가 있다.

아울러 지은이 송 순이 처해 있던 시대와 그의 벼슬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쟁(黨爭)의 단면을 훑어볼 필요가 있겠다. 잡느냐 놓치느냐에 따라 정의(正義)의 음양이 그 얼굴을 바꾸던 시대, 말하자면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를 두고 다투던 처절한 당쟁은 송 순이 살던 선조 시대에도 걷힐 줄 몰랐다. 당쟁의 파문은 당대 사회의 각계 각층에 지대한 상처를 남김을 또한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그토록 허다한 옥사와 사화(士禍)는 너무나 가혹했고,그 연좌의 범위는 직계존속은 물론, 내·외척에 이르기까지 마련이어서 그만큼 사회 불안의 폭을 크게 하기가 일쑤였다. 환로(宦路)에 나가서 정치의 포부를 펴던 사람치고 당쟁의 화를 입지 않은 사람이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 시조의 소재는 이른바 명종(明宗) 즉위년(卽位年)에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지은이는 이때 이에 연좌되어 파직 유배의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 동원된 은유들은 그 사회의 참극과 무관할 수가 없다.

꽃이 진다는 속뜻은 을사사화 때 죽은 죄 없는 선비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새들은 세상을 바로 보는 뜻 있는 사람들의 총칭이며, 바람은 을사사화로 일어난 모진 풍화이다.
희짓는 봄은 당시 사화를 꾸며서 성공한 득세파, 이를테면 집권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사관불출(辭官不出)로 어지러운 세상과 담을 쌓았지만, 이 불의의 사화가 하나의 역사의 계절임을 달관하고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마음을 가라앉힌 그 태연자약한 모습이 새들아 슬퍼마라는 구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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