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의 소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일소였다는 것을 잊고 고기소로 바뀌어 좁은 우리 안에서 일은 하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해온 농후사료를 배부르게 먹고 살이 쪄서 이제는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송아지들은 태어나서 바로 일어선다. 눈이 크고 콧구멍도 넓다. 입은 넓죽하고 두 귀는 쫑긋하고 귀엽다. 크고 둥그란 두 눈의 쌍꺼풀은 돋보이고 촘촘하고 길게 나있는 속눈썹은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가 유리구슬처럼 해맑아 마치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을 보는 것처럼 시원하다. 일곱 여덟 달쯤 되면 고분고분 잘 따르지 않아 코뚜레를 끼운다. 코뚜레는 여름철 산에 가서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의 다래 나무줄기를 베어와 어른 주먹이 들어갈 크기로 휘어서 끈으로 붙들어 메어 벽에 걸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마다 사용한다. 코뚜레를 끼우고 나면 소들은 생을 마치는 날까지 고삐도 메어져 살아가야 한다.
어깨선이 당당하고 네 다리의 골격이 튼튼하여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순종한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에게도 몸을 낮추어 반항하는 일이 없다.
소들도 사람처럼 성격이나 먹는 습성도 다르고 좋아하는 취향과 여러 가지 행동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들의 무리 속에서는 확실히 질서와 서열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싸움이나 다툼보다는 양보와 복종으로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그러나 큰 소들의 눈은 우수에 젖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가 고프거나 헤어질 때도 그렇고 괴롭거나 슬플때 그 감정들을 모두 눈으로 담는다. 왕방울처럼 튀어 나온 눈동자는 앞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고개만 움직여도 전후좌우를 거의 다 볼 수 있다. 어두운 밤에도 낮처럼 볼 수 있으나 색맹이라서 색의 감각은 둔하지만 대신 후각이 발달하여 멀리서도 냄새를 맡고 무엇이든 골라서 먹는다.
일소들은 밭일을 거뜬히 해내었다.
그러나 이제 일을 하는 것에서나 말뚝에 묶여 있는데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직하고 성실하게 사람들을 따르면서 전답과 터전을 일구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해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냄이 별로 없고 아무리 힘들어도 꾀를 부리지 않는다. 호되게 꾸짖고 채찍을 해도 못들은 척 눈만 껌벅거릴 뿐 어떤 원망도 항의도 없고 제 탓으로만 돌린다. 누워서 지긋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반쯤 뜬 눈으로 오랜 시간 동안 뱃속의 먹이를 다시 입으로 끌어내어 되새김질 하는 것은 마치 구도자들의 모습처럼 경건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사 모든 것 달관하고 오직 침묵으로 고통과 슬픔을 곱씹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운명 앞에 순응하고 안으로 다스리는 방편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가축보다 새끼와 어미소의 살가운 정은 인간의 모성애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 모자의 헤어질 때의 애처러운 광경은 눈물이 핑 돈다. 어쩌다 참고 참다가 쏟아 놓는 외마디 꺽꺽거리며 토해 놓는 울음 속에는 응어리진 한과 애절함이 절절히 사무쳐 담겨 있으리라.
아마도 이 땅에 이 소들처럼 일을 거들면서 우리민족과 더불어 온갖 고난과 애환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가축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