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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대안학교
대안학교는 여전히 ‘실험중’

뉴스메이커 | 기사입력 2007-07-19 16:06  


“주입식 교육은 안합니다 모든 것은 소통을 통해 이뤄지죠”  
간디학교의 한 학생이 학교건물 지붕 위에서 독서를 하고 있다. <김세구 기자>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5분. 보통 중·고등학교라면 4교시가 막 시작할 시간이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잠이 부족한 아이는 교과서를 펴들고 살짝 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불어가는 배움터 길’ 아이들은 달랐다. 한 아이는 기타를 치고, 다른 편에서 교사를 둘러싼 아이들이 웃으며 뭔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교실 벽에는 만화영화 ‘토토로’의 주인공과 고양이 버스가 큼지막하게 그려 있다. 안쪽 벽은 ‘뷁’이라는 글씨로 장식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그린 겁니다.” 박진홍 길잡이 교사의 말이다.
7월 12일, 이 학교 아이들과 교사들은 격론을 벌였다. 학교가 출판단체에서 받은 책 2000여 권 중 겹치는 책의 처리방법을 놓고 벌인 토론이다. 교사들이 겹치는 책을 다른 학교나 사정이 더 열악한 곳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학교 도서관을 책임지는 ‘도서관지기’ 아이들이 “선생님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 30여 분 토론 끝에 아이들과 교사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단 책이 겹치는데다, 우리가 잘 보지 않는 책이니까 나눠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 도서관지기의 결정 권한에 대해서는 다시 전체회의에서 결정해야 한다.

모든 일은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 어떻게 보면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박 교사는 “선생님들도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보다 수평적 관계를 원하지만 중학교 시절 아이들에겐 그게 또 다른 당위로 다가오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인다.

“일차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의사)소통을 통해서 이뤄지죠. 두 번째로 교사의 역할과 전통적 권위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다른데, 대안교육에서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상담자이면서 조력자, 다시 말해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을 매개하는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는 텍스트에 의존해서 관념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교육을 지향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이치열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이 말하는 대안학교의 변별점이다.

인가·미인가 포함 99개교 5179명

대안학교는 여전히 실험 중이며 진화하고 있다. 이제 교육은 교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산으로 들로 나가 노동을 통해 체험학습을 하거나, 여행을 통해서, 지역사회의 문화지도를 그리거나 마을생활 지도를 그리는 과정을 통해서도 교육은 이뤄진다. 사실 대안교육이 표방하는 대안(alternative)이라는 가치 자체가 이미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실험이다. 중요한 것은 운영원리와 원칙이다. 이 국장은 “위에서 강압하거나 억압하는 교육은 학습효과도 떨어지므로,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 자기주도적 학습원리를 갖고 공부하는 게 대안교육이 생각하는 운영원리”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입시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누군가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대학이 필요하다면 거기에 맞게 입시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고, 꼭 대학에 안 가도 된다면 인턴십을 거친다거나, 관련 연구기관과 멘토링을 맺는 등 다양한 진로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한국에서 대안학교의 실험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김종구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기획팀장은 “엄밀히 말해 대안학교는 아니지만, 그 뿌리는 1970~1980년대 야학이나 공부방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더 멀게는 1950년대 홍성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까지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안학교의 기원을 따진다면 여성·문화운동이나 공동육아운동·대안교육운동가들의 자발적 모임 등 다양한 뿌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대안학교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수면에 떠오른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 산청 간디고나 영광 성지고, 경주 화랑고 등이 문을 연 것은 1998년으로 얼추 10년 정도의 역사로 평가된다. 생각에 따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다. 그간 대안학교 ‘실험’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전체 졸업생 82% 대학에 진학

우선 외형적 지표. 현재까지 인가·미인가 시설을 포함하여 대안학교로 분류할 수 있는 학교는 99개. 실제로는 전국적으로 100에서 110여 개로 ‘추정’한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가 대안교육 10년을 맞아 백서 발간을 목적으로 조사 중인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대안학교에서 재학 중인 학생 수는 5179명. 2007년 2월 대안학교를 졸업한 수는 1153명이다. 이 졸업생 중 교육당국이 졸업을 ‘인정’한 인원은 782명이다. 교원 수는 1945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420명은 비상근 교사이며, 706명이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한다. 현재 99개교의 상근교사 수는 819명으로 집계된다. 전체 졸업생의 82%는 대학에 진학하고, 그중 3%는 취업하고, 15%는 재수를 포함한 기타 진로를 모색 중이다.

이수광 분당 이우학교 교감은 “대안교육의 담론을 고정된 틀로 보면 안 된다”며 대안학교가 분화하고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1998년, 교육당국은 특성화 중·고교 제도를 도입해 대안학교를 제도화하는 길을 연다. 대안교육잡지 ‘민들레’의 현병호 발행인 겸 대표는 “1998~1999년 특성화 학교들로 대표되는 대안학교가 고등학교부터 생겨난 것은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고교로 단계를 밟아 대안학교들이 생긴 반면, 한국은 워낙 입시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마치 ‘응급처방’처럼 고등학교부터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분당 이우학교나 산청 간디학교처럼 특성화 학교로 분류되는 곳은 현재 29개교. 이들은 3분의 2는 국민공통기본교과를 가르치고, 나머지 3분의 1은 대안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청 간디학교의 경우 지난해 졸업생 40명 중 35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전문대를 포함한 수치다. 속칭 명문대를 간 학생들은 얼마 안 되며 대부분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능계 학과에 진학했다. 성공회대나 한신대·한동대와 같이 대안학교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이우학교는 지난해 2월 1회 졸업생 59명을 배출했고, 올해 68명이 사회에 진출했다. 지난해 서울대에 2명이 합격하는 등 졸업생 대학진학률은 90%가 넘는다.  
방과 후 대안학교인 ‘착한학교’ 의 천문관측 동아리 ‘별을 찾는 아이들’ 의 학생들. <박민규 기자>  
물론 이들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한 미인가 대안학교 활동가는 “특성화 고교를 인가된 대안학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제도화된다면 결국 대안교육의 취지는 사라지고 말 것이며, 실제로 그 학교들이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학교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도 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여태전 간디학교 교감은 “일반 학교는 좋은 대학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간디학교 교사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면 대안학교의 정체성을 상실한다고 생각한다”며 “보통 2, 3학년은 선택교과를 하는데,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따로 해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재정문제는 쉽게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일각에서 대안학교를 민족사관 고등학교와 같은 자립형 사립고와 비슷한 학교로 ‘오해’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학부모의 부담이 많다는 것. 분당지역 일반계 고등학교가 분기별 등록금이 43만 원인데 비해, 이우학교는 134만 원. 3배가량 더 많다. 보통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사립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에서 인건비 등 지원을 받는데 이들 학교는 지원받지 않기 때문이다. 현 대표는 “사실 대안이라는 개념이 열려 있기 때문에, 민사고와 같은 자립형 사립고도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나름의 인식에서 스스로 대안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대안학교라고 할 수는 있다”며 “그러나 평가 잣대로 학생과 교사의 자율성, 구성원의 민주적인 학교운영구조, 특정종교 교육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민사고를 대안학교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반면 분당 이우고는 대안교육운동과 공유되는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교사 절반 이상 교사자격증 없어

미인가 대안학교도 재정부담은 마찬가지다. ‘더불어가는배움터 길’은 학원건물을 5000만 원에 임대, 월 60만 원을 월세로 내고 있다. 박 교사는 “처음 설립한 사람들이 가구당 300만 원씩 기부했고,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가구당 500만 원씩 출자했다”고 밝혔다. 현 대표는 “대안학교의 문턱을 낮추자면 국가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될 경우 대안학교 스스로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개인적인 견해로는 공교육에서 초등학교 학생 1인당 200 얼마 식으로 교육비가 책정되어 있는데 적어도 그 비용은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사자격증 문제도 해묵은 과제다. 현재 대안학교 교사들의 절반 이상은 교사자격증이 없다. 지난 7월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임해규 의원(한나라당)이 주최한 ‘대안교육 법제화’ 토론회에 참석한 이철국 고양자유학교 대표교사는 “대안학교 교사들은 대안교육을 이끌어온 실질적 주체면서 대안교육의 가치관을 체화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분들인데, 단지 교사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사회의 커다란 교육적 자산을 배제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박복선 성미산 학교 교장은 “개인적으로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사범대나 교육대를 나와야 받는 교사자격증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반면 김성기 협성대학교 교수는 “검증되지 않은 교육으로 학생들이 입을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안학교 교사도 교사자격증이 필요하다”며 “사회복지사나 미술치료사 등 대안학교에서 필요한 다른 인력은 다른 규정을 만들어 도입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안학교의 법적 지위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현행 의무교육관련법은 ‘학교설립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의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하여 시설을 사실상 학교의 형태로 운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67조)고 되어 있다. 이 법만 볼 땐 현행 미인가 대안학교는 모두 불법인 셈이다. 지난 3월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대안학교들에게 ‘학교이름을 쓰면 안 되며, 학생들의 명단을 제출하라’고 공문을 보내 물의를 빚었던 것도 이 조항을 근거로 한다. 2005년 현행 초·중등교육법 60조3항으로 대안학교 규정이 신설되면서 대안학교 법제화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올해 6월 28일 발표한 시행령을 두고 논란이 크다. 논란의 중심은 자가 시설을 원칙으로 하는 시행령상 인가기준대로 하면 현재 존재하는 대안학교 대부분은 인가받을 수 없다는 것. 고양자유학교 이 교사는 “많은 부분은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것 모두 인가받은 뒤의 일이기 때문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대안교육연대 이 국장은 “결국 지난 10년 동안 대안학교를 일궈왔던 주역들은 시행령에서 다 소외되고 대안교육의 취지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수혜자가 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입시형 대안학교, 특정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학교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윤인재 교육인적자원부 교육복지정책과 과장은 “현재 시행령에서 그런 우려가 제기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안교육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안학교설립운영위원회의 검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적 법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임해규 의원은 “특성화교육법이나 기존 법 시행령으로 대안교육·대안학교의 내용을 담는 것은 미흡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대안교육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정용인·권순철 기자 inqbus@kyunghyang.com>


대안학교 10년… 간디·이우학교 졸업생 집중인터뷰


2007 07/24   뉴스메이커 734호


“거침없는 자율성, 행복의 왕도는 없어요”


간디학교 학생들이 학교 건물 아래·위층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안학교 졸업생들은 과연 행복한가. 그들은 졸업 후 어떤 인생의 행로를 밟고 있을까. 그들이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안의 커리큘럼’들은 그들이 삶을 디자인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한국의 대표적인 대안학교 이우와 간디 졸업생들의 현주소를 묻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그들은 소위 ‘제도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제도권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제도권을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동년배의 열정과 고민을 안고 사는 그들에게 대안고등학교에서 보낸 3년은 소중한 추억이자 자양분이다. 그들의 삶의 에너지, 다양한 인생 실험의 과정을 집중 인터뷰했다.


두 달 전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조한비씨(22·간디학교 5회 졸업)는 요즘 ‘작업실’ 꾸미기에 한창이다. 샛노란 장판에 형광등으로 불을 밝힌, 칙칙한 자취방에서 장판을 걷어내고 시멘트 바닥에 에폭시를 칠했다. 형광등을 없애고 스탠드를 몇 개 달았다. “앞으로 이곳을 전시공간이자 공연공간으로 쓰고 싶어요. 여기 꾸미느라 제 홈페이지에 여행기도 아직 다 못 올렸어요.”


조한비 [22·간디학교 5회 졸업] 조씨는 대안학교 졸업생 중에서도 특히 더 실험적인 삶에 주목한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입학한 대학에 실망해 1학기 만에 자퇴, 목수 일을 하며 돈을 벌어 1년 동안 유럽과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녔다  
7월 10일 저녁, 기자와 만난 그는 보사노바뮤지션 베벨 질베르토의 음반을 틀었다. 네팔에서 직접 사 온 찻잎으로 짜이(인도 차)도 내 왔다. 2005년 간디학교를 졸업한 조씨는 대안학교 졸업생 중에서도 특히 더 실험적인 삶에 주목한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입학한 대학에 실망해 1학기 만에 자퇴, 목수 일을 하며 돈을 벌어 1년 동안 유럽과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녔다는 이력이 이를 보여준다.

“제가 경험한 대학은 진지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열정 없이 그저 학점을 따기 위해 철학자의 이름과 이론을 외우는 현실이 싫었어요. 그러기엔 제가 번 등록금이 너무 아까웠죠.”

그는 ‘열정적인 배움’을 원했다고 했다. 여행을 떠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용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목수 일을 하다가 건축을 공부해보겠다고 결심했고 “우리가 갖고 있는 서구에 대한 판타지가 수입한 것에 대한 단순한 환상인지 아니면 실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길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은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각기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고,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을 해보겠다는 게 그의 포부. 프로젝트에 ‘사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에 철학아카데미도 수강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간디학교 선·후배들과 돈을 모아 삼청동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다음 해쯤엔 입대할 계획이고 이후엔 건축공부를 하러 유학을 갈 생각이다. 훗날 ‘가치있는 소비’를 이끌 수 있는 ‘대안 라이프스타일 숍’을 차릴 계획도 있다.

돈 걱정 안 하는 ‘몽상가 도련님’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 때쯤, 그가 말했다. 스무 살 때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노라고. 등록금은 물론 여행비, 작업실 전세금까지 모두 그가 벌었다. 고3때부터 막노동 등을 하며 목수 일을 익힌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이 밝기만한 것은 아니다. 냉정한 눈으로 본다면 그는 자력으로 생계만 해결했을 뿐인 ‘백수’다. 공연·전시 등 문화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확신할 수 없다. 게다가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은 열정적으로 살고 있기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조씨는 에너지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실험파’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간디학교 졸업생이 조씨처럼 제도권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삶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니다. 조씨가 ‘거침없이’ 다른 길로 나아간 스타일이라면 대부분 간디학교 졸업생은 기존의 제도 속에서 깨지고 부딪치면서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신지현 [26·간디학교 2회 졸업] “대학엔 오로지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요. 하지만 전 좋은 성적을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좋아서 작품(과제물)을 만들었어요. 모든 경험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저의 태도 때문인 것 같아요. 간디학교를 통해 얻은 보물이죠.”  
간디학교 2회 졸업생(2001년) 신지현씨(26·경원대 섬유미술학과 4년). 그는 대안학교 출신이라는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와 융화하는 길을 찾으려 노력한다. 간디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입시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일반 고등학생들과 같이 치열한 입시를 경험한 신씨는 의외로 입시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다같이 치열하게 공부하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것도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이잖아요.”
입시를 떠올릴 때면, 신씨는 대안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잡았을지도 모를 일류대 진학기회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고 한다.
신씨는 “열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 일류대인데, 그런 곳에서 공부해보고픈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그리는 것보다는 만드는 것을 좋아해’ 섬유미술학과를 선택한 신씨는 학교에서도 열정적이고 성실한 학생으로 통한다. 성적도 좋아 장학금을 네 번 탔다. “대학엔 재밌어서, 즐거워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요. 하지만 전 거꾸로 좋은 성적을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좋아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모든 경험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저의 태도 때문인 것 같아요. 간디학교를 통해 얻은 보물이죠.” 학점관리를 따로 하지는 않았어도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대안학교 출신이니까 으레 뭔가 다르겠거니’ 하고 바라보는 눈이 있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 ‘불편함’은 되레 미술학도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녀는 갖가지 색깔의 ‘프라모델(플라스틱 모델)’을 이용해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겐 다양한 색깔이 있는데 한 가지 이미지로만 규정돼버리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수업 과제로 제출한 이 작품은 교내 경선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상금 100만원도 받았다. 신씨는 곧잘 기존 제도와 자신이 부딪칠 때의 불편함과 고민을 개념화해 작품을 만든다.

졸업을 앞둔 신씨의 고민은 단연 취업과 사회생활이다. 지난 학기까지 진행한 작업의 제목은 ‘사회초년생물도감’. 커다란 공작새를 만들어 깃털마다 입술을 달았다. 능력보다는 화려한 언변을 가진 사람이 더 잘 나가는 사회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신씨는 “아직 사회 경험이 적어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작업을 접었다. 지금은 좀 더 솔직하면서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신씨처럼 성실하게 대학생활을 하고도, 회의를 느껴 다시 방향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2001년 간디학교를 졸업(1회)해 광고학을 공부하는 김한성씨(27·한신대 광고학과 4년)다.


김한성 [27·간디학교 1회 졸업] “사실 얼마 전까지 제 인생을 지배한 건 불안감이에요. 대안학교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모두 공모전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상을 타오고 또 누구는 강력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학원에 등록하는 현실을 초월하기란 아주 힘들죠.”  
김씨는 “간디학교에서 축제를 기획하다 재미를 느껴” 이벤트 기획 커리큘럼이 있는 광고학과에 들어갔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3년이 지나자 곧 회의감이 들었다. “창작 자체는 즐거웠지만 결국 상업적 가치가 우선이 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죠. 이를테면 제 생각에 삼성전자는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닌데, 그런 내용의 광고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김씨는 결국 광고를 배운 지난 대학생활은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기로 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가치관에 반하지 않는 일을 찾다가” 새롭게 사진을 선택했다.

“제 안에 빛나는 게 있다면, 그걸 마음속으로 응원하지 않는 대기업 이미지를 위해 활용하기보다 저의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죠.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는 지인들을 통해 오랫동안 언론사에서 사진을 찍어온 ‘스승’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면 곧 그를 찾아가 다시 사진을 배울 생각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 제 인생을 지배한 건 불안감이에요. 대안학교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모두 공모전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상을 타오고 박수갈채를 받고, 또 누구는 강력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학원에 등록하는 현실을 초월하기란 아주 힘들죠.”
최근 간디학교를 통해 ‘느리지만 멋지게 사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생각을 달리한 계기가 됐다. “중학교 이후로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건축가를 만났어요. 온갖 종류의 책을 섭렵해 어떤 주제를 놓고 얘기해도 그 분은 해박하셨어요. 몇 살 때까지는 뭘 해야 한다는 세상의 공식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재미있게 사느냐’라는 걸 또 한 번 느꼈어요.”

그러나 마음을 굳게 다잡은 김씨도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면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부모님도 머리로는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가 봐요. 졸업 후 제 모습에 대해 불안해하시는 게 느껴지죠. 그렇다고 부모님께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사실 힘들어요. ‘그저 잘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믿어주시는 것이겠죠.”

김한성씨와 신지현씨가 대학이라는 기존 제도와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반면, 구호열씨(25·간디학교 1회 졸업)는 처음부터 대학을 거부했다가 방황과 갈등 끝에 다시 대학공부를 결심했다.


구호열 [25·간디학교 1회 졸업] “간디학교에선 늘 제게 음악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칭찬해줬죠. 차라리 ‘재능이 없음을 일찍, 냉정하게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원망도 했어요.” 하지만 뒤늦게라도 스스로 깨닫고 선택한 것이야말로 ‘진짜’라는 생각도 한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구씨는 대학 실용음악과에 갈 수 있었지만, 굳이 자신에게 대학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럼프스 오브 슈거’라는 밴드를 만들어 전국 대안학교투어를 했던 것은 좋은 추억거리였다. 하지만 그 외엔 대부분 방황의 기억뿐. 구씨는 5년 만에 자신이 프로 음악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 3때부터 음악만 생각했던 그로서는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오랜 방황과 고민의 경험을 뒤집었을 때 답이 나왔다. 늘 상담할 누군가를 찾던 그는 ‘방황하는 이들을 상담해주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심층적으로 상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공부와는 담 쌓았던 그가 내년 수능을 위해 펜을 들었다. 중학교 문제집 등 아주 기초적인 수준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죽도록 하기 싫었던 공부가 지금은 무척 재밌다.

“간디학교에서는 늘 제게 음악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칭찬해줬죠. 차라리 ‘음악에 재능이 없음을 일찍, 냉정하게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원망도 했어요.” 하지만 구씨는 뒤늦게라도 스스로 깨닫고 선택한 것이야말로 ‘진짜’라는 생각도 한다. “제가 스스로 느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공부를 신바람나게 할 수는 없었겠죠. 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공부는 절대 안 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구씨는 비록 졸업 후 오랫동안 방황하고 갈등을 겪었지만 대안학교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학교에 가서 각 과목 선생님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그런데 뒤늦게 수능을 보려는 저에게 선생님들이 건넨 첫마디가 ‘멋있다’였어요. 솔직히 찾아갈 땐 머쓱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힘이 났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한다은 [20·이우학교 1회 졸업] “이우학교가 저에게 준 것은 풍부한 여가와 자율입니다. 학교 안에서 저는 커리큘럼 자체의 우수성보다 그런 여유를 주는 것에 감사했어요. 충분히 놀고, 갖가지 문화를 체험했고, 대학 진학이라는 짐에 휘둘리지 않았어요"  
이우학교 1회 졸업생(2006년) 한다은씨(20)는 1학년 입학 전 6개월 간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첫 학기를 보냈다. 이우학교가 가을 학기부터 첫 신입생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고등학교에서 보낸 6개월을 ‘끔찍한 시기’로 기억한다.
“야간자율학습, 새벽부터 시작되는 ‘0교시수업’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왜 학생들에게서 생각하고 숨쉬고, 여가를 향유할 권리를 박탈하는 건가요. 그 문제로 끊임없이 선생님들과 부딪쳤어요. 자율학습, 0교시수업에 항의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전교 선생님들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죠.”

다행히 그는 이우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고 부모님은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갔고, 그 분위기에 감사했다. 그는 이우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공동체 생활의 가치와 기쁨을 경험했다.

“학교의 여러가지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눈을 떴어요. 특히 종교단체 기행이 인상적이었어요. 수녀님들이 생활하는 수도회를 견학했는데 천주교라는 종교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죠. 천주교에 대한 관심은 불교로도 이어졌습니다. 제가 가진 종교와 다른 종교문화를 접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사유의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

한씨는 미술에 관심과 재능이 있어 이우학교와 예술고 사이에서 잠깐 고민했다. 졸업 후 그는 외국어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을 마친 후 자퇴했다. 경영학 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자신이 설계한 인생의 진로 때문이었다. “저는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궁극적으로는 영상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바꿔 광고 제작자가 되고 싶어요. 광고 제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죠. 그래서 경영학과를 선택했던 거예요. 그런데 막상 입학한 후 생각해보니 경영학보다 디자인 공부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영학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면서 디자인 공부에 집중하기로 한 거죠.”

한씨는 그래서 외대 1학년을 마치고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3년제 ‘아트 앤 디자인 인스터튜트’에 입학했다. 미국에 유학가 미국 광고 제작의 진면목을 익히고 그곳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그는 신흥명문, 뉴아이비리그로 인정받는 카네기멜론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우학교가 저에게 준 것은 풍부한 여가와 자율입니다. 학교 안에서 저는 커리큘럼 자체의 우수성보다 그런 여유를 주는 것에 감사했어요. 충분히 놀고, 갖가지 문화를 체험했고, 대학 진학이라는 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쓴 일기장을 보면 감성에 충만한 온갖 아이디어가 전개되죠. 지금 나이에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10대에는 놀고, 20대에는 공부하고, 30대에는 돈 벌고, 경제생활을 하자는 것이 저의 인생계획입니다.”


윤준혁 [20·이우학교 1회 졸업] “이우학교에서 배운 것은 인간끼리의 관계에 대한 것이죠. 그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3년 내내 한 번도 서로 싸우거나 왕따시키거나 억압하지 않았어요. 대안학교의 힘은 이런 데서 나온다고 봐요.”  
같은 해에 졸업한 윤준혁씨(20)는 한신대 철학과에 진학해 1학년을 마친 후 휴학한 상태다. 그는 “학교에 다시 돌아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독일에서 철학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지금은 독일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한신대는 진보적인 성향의 교수님과 학생도 많죠. 그렇지만 진보적인 성향의 대학이 진정한 진보, 즉 인간관계의 자유로움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보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나왔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커리큘럼에 있는 철학과목에 흥미가 있었어요. 수업을 열정적으로 진행했던 선생님도 있었고요. 평소 생태학, 환경, 인권문제, 미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재학 중 니체의 책에 몰두했고요. ‘도덕의 계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매혹됐죠. 그 거대한 사상과 아름다운 문체….”

그 역시 일반 고등학교에서 보낸 6개월을 ‘고통스런 경험’으로 기억한다. 특히 두발과 복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간섭이 힘들었다. 사소한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규제와 간섭은 억압의 체계가 깊이 스며든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우학교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3년 내내 한 번도 누군가를 왕따시키거나 억압하지 않았어요. 대안학교의 힘은 이런 데서 나온다고 봐요. 인간관계의 진정성 같은 것이 충만했어요.”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나 쾰른으로 유학갈 계획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과 한 학기 50만 원 정도에 불과한 학비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독일의 대학이 부여하는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 독일 철학계의 깊이가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최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학위를 따서 교수자리를 얻는 것은 아니지요. 철학하는 행위의 본질을 추구하다 보면 인생의 길에도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철학은 ‘언어’를 통해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인인 이상 ‘한국어로 어떻게 철학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화두가 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포인트일 수 있겠지요.”

그는 자크 데리다가 말했던 “모든 공동체는 악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숙고하고 있다. 모든 공동체는 피할 수 없는 억압 기제를 갖게 마련이라는 뜻인데, 이렇게 본다면 이우학교도 예외일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우는 조금 달랐어요. 예컨대 학생들의 흡연·음주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요. 문제학생이라는 관점보다 저 학생이 요즘 무슨 고민이 있나 보다, 라고 여기며 접근하는 거예요. 그런 학교 분위기 속에는 인간관계의 자유로움, 진정성이 깃들어 있지요.”

한씨는 단체 행동, 공동체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억압과 강제의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하지만 그는 재학 중 2박3일에 걸친 안면도 도보여행의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
“‘이런 무모한 짓을 왜 단체로 시키는가’ 하고 회의를 했지요. 그러나 여행이 끝나갈 무렵, 한 가지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끼리의 동질감,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명료한 의식 같은 것을 느꼈어요.”
그는 이우학교의 특성, 대안고의 미덕을 특별한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학교들이 이상한 거죠. 학교가 거대한 권위, 강제적인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너무나 평범한(정상적인) 학교에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대안학교 학부모가 본 대안교육의 현실


2007 07/24   뉴스메이커 734호


“우리 민경이 학교생활은 아주 즐겁답니다”


체육대회에 참가한 학부모와 아이들이 기마전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십중팔구 이렇게 묻는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 학교 학력을 인정해주나요?”, “거기 나와서 대학은 갈 수 있나요?” 등등. 질문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교육의 현실과 대안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입시’ 벗어난 독립적인 교육과정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라는 질문은 대안학교를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나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가진 학생이 다니는 학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대안학교가 존재하고 이들 학교가 교육과 관련하여 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학생이 다른 학생과 똑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은데도 그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학교가 대안학교라면, 결국 공교육이 이러한 학생들을 껴안지 못한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있다. 내 딸 민경이에게 이러한 부적응 상태나 정신적·육체적 불편함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우리 가족이 대안학교를 이렇듯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떠밀리듯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학력인정과 대학입시에 관련된 질문은 교육에 대한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관점을, 나아가 교육제도에 대한 체념적·수용적 태도를 담고 있는 질문이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학부모는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나 보다. 민경이가 다니고 있는 ‘더불어가는배움터 길’은 비인가 중등대안학교다. 이 학교 6년 과정을 다 이수한다 해도 중·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면 우선 검정고시를 봐야 할 것이고 또한 대학입시를 위해 따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배움터 길’은 경쟁에서 자유로운 학교를 표방하고 대학입시라는 틀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교육과정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학교 나와서 대학 가기도 힘든데 굳이 왜 대안학교를 보냈나요?”라는 질문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아이에게 단지 남들이 다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경쟁관계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말 속에는 공교육의 현실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담겨 있다. 공교육은 교육의 본래 목적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을 구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참다운 자기의 실현이라고 할 때 이렇듯 경쟁에 찌든 모습이 참다운 자기일 수는 없다. ‘배움터 길’의 학교설명회자료집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이러한 우리 가족의 고민과 서로 맞닿은 지점이다. “우리는 배움터 길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며 그리하여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실천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배움터 길이 표방하고 있는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하나, 자기주도성을 키우자. 둘, 가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자. 셋, 사회적 소통과 공존능력을 키우자.

고맙고 다행스럽게도 민경이는 즐겁고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사이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민경이가 겪은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아이들과 관계에서 비롯했다. 여느 대안학교처럼 배움터 길 역시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전면적일 수밖에 없다. 적은 수의 아이가 매일 좁은 공간에서 맘에 들던 들지 않던 간에 지지고 볶고 서로 어울려 지내야 한다. 그러니 관계가 조금 이상해질 땐 바로 아이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민경이는 이러한 상황을 잘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자기와 다른 타인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지금은 동료들에 대해 “이 아이는 이래서 싫고, 저 아이는 저래서 싫어”라고 부정적으로만 평가했던 초반과는 달리 이제는 “이 아이는 이런 점이 장점이고, 저 아이는 저런 점이 장점이야”라고 말한다. 이해관계에 따른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지배적이고 그마저 일회용 상품처럼 싫으면 쉽게 내버리는 것이 보통인 현대사회에서 끈끈하고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우리 아이들이 이런 관계를 맺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대안교육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 가고 싶으면 검정고시 치러야


지난 3월 ‘배움터 길’ 길지기 총회에 참석한 교사와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학교의 모든 주체가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아직 미약하지만 학교와 지역과 관계도 이렇게 만들기 위해 각 주체가 노력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안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후 변화하는 아이의 모습에 만족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들은 물질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에 문제가 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인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했거나 아니면 대안학교를 선택한 후 그곳에서 이러한 대안적인 삶의 가치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고자 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과 전면적으로 만나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대안학교가 주는 큰 즐거움이다. 그들과 교육을 화두로 세상을 다른 식으로 살아보려는 작은 움직임을 나눌 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적인 삶이란 나와 타인과 자연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삶이며 교육은 그러한 삶을 구현하기 위한 길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상만으로 학교를 세우고 터전을 마련하고 교사 인건비를 지불하기는 대단히 힘들다는 사실이다. 대안학교가 학부모 주머니를 털어서만 운영된다면 그 부담을 감당할 학부모가 얼마나 될 것이며,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대안교육에 대한 일종의 진입장벽이 될 소지가 크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지점이다. 교육은 민주사회의 기본 권리다. 이 권리를 실현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민주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이정기〈더불어가는배움터 길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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