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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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권정생 이야기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로 문단에 등단하여 40여년간 1천여편에 이르는 주옥같은 동화글을 써낸 동화작가 권정생님의 문학과 삶을 정리한 책 둘째 권에는 그가 기독교인으로 느끼는 갈등, 가난·산업화와 물질로 병들어 가는 농촌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단상들, 수기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이현주 목사, 정호경 신부, 전우익, 권오삼 선생에게 보낸 편지, 권정생의 문학과 삶을 논한 5편의 글이 실려 있다.

권정생님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풍요롭고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많은 어른과 어린이들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게 했고, 가난의 의미를 알게 했으며 삶의 의미를 일깨워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그의 대표작 <강아지똥>이 꽃으로 부활했듯 그는 이제 문학 작품을 통해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게 될 것이다.

예수의 가난한 삶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

권정생님은 1936년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평생 가난을 벗하며 살았다. 죽을 때까지 시골 교회의 종지기로 기독교인들의 가슴에 예수의 참마음이 울려 펴지길 원했고, 죽을 먹더라도 북한의 굶주린 어린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기를 갈망해 자신의 인세 모두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남기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사람. 그야말로 예수가 원했던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간 진정한 예수의 제자였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자신도 가난하게 산 것은 이 세상의 누구도 다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헐벗은 사람과 함께 헐벗었고, 굶주린 사람과 함께 굶주렸고, 그리고는 옥에 갇히고 형틀에 매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전의 삶처럼 죽은 뒤에는 역시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희”라고 한 말은 지금도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목숨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체 게바라가 항상 가슴에 지니고 다녔다는 레온 필립의 시를 소개한다.

그리스도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연고는
당신이 별나라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이 아니외다
당신이 내게 가르치시기를
인간은
피와
눈물과
불안과
광명을 막고 닫혀 진 문을 여는
열쇠와
연장을 가졌노라고 하셨기 때문이외다
그러하외다. 당신은 인간은 하느님이라고...
당신처럼 십자가에 달린 가련한 하느님이라고,
골고다에서 당신 왼편에 섰던 못된 도적도
역시 하느님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때문이외다.

그는 예수가 원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 왜 예수의 제자가 걸어야 할 삶의 길인지를 말이 아닌, 삶으로 직접 보여 준, 그야말로 진정 예수의 복음을 마음으로 깨달아 실천한 참 제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전쟁과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을 등에 업은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한 사람보다 잘사는 모습에 끊임없이 회의하고 그의 곁에 남았던 이현주 목사와 신부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되묻곤 했다.

모든 걸 빼앗기고 다만 먹고 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들은 주일날 예배당 나갈 시간도 없습니다. 이제는 교회 나가는 사람도 차츰 잘 사는 사람들만으로 형성되어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잘 사는 사람들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섭섭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힘으로도 사랑하는 예수님을 불쌍한 사람들 곁에서 빼앗아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위의 고백처럼 그는 인간 예수의 삶을 사랑했기에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한 사람답게 사는 동안 늘 가난한 이들이 벗으로 살았다.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것임을, 그 누구도 그와 다른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자리한 예수를 빼앗을 수 없었다.

똥의 이름까지 향기로 기억되게 한 사람

어느 날 여자 중학생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당당한 문학가이신데 왜 서울에 가서 좀 더 이름을 날리며 살지 않고 촌에서 사느냐?"

그는 그 말을 듣고 문학이란 것이 아이들이 보기엔 "이름을 날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리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참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남이 아무도 몰라줘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민들레'란 꽃 이름말고도 '말똥굴레(민들레의 안동지역 방언이라고 함)'란 예쁜 토박이 이름도 공존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는 들풀 하나도 심지어 모기도 내쫓지 못하고 그 존재와 생명을 인정한 사람이다.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따로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따뜻한 마음과 눈길을 지녔던 것이다. 그의 눈길에 잡혀 이름이 불리어지고 하나의 의미와 눈짓이 된 모든 들풀과 곤충, 그와 마음을 나누었던 지인, 그 어느 것 하나 행복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랴.

70 평생 그는 외롭고 고독했으며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결코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을 것이다. 봄이면 온 천지 가득 피어나는 황금빛 말똥굴레(민들레)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문학 역시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영원히 발할 것이기에.  





모두 비우고 떠난 권정생, 그가 채워주는 것들



타게한 동화작가 권정생의 삶은 '녹색 세상'을 열고 홀연 사라지는 흡사 봄바람 같았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세상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남겼기 때문이다.


혈육은 아예 없었고 5평짜리 흙집도 허물어 자연으로 돌려보내라고 지인에게 당부했다. 혹시라도 자신을 기념하는 일은 제발 없도록 하라고 일렀다.


그가 생전에 남긴 유언은 새삼 우리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인세는 굶주리는 북녘의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 남과 북이 통일을 이뤄 잘살았으면 좋겠다. 시신은 화장하여 집 뒷산에 뿌려잘라.' 권정생은 진정 남아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진실한 동화작가이며 시인이었다. 삶과 문학이 일치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바보, 장애인, 노인 같은 약자들이거나 똥이나 돌, 풀처럼 볼품 없는 것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 그것들을 가장 따뜻하게 바라보고 보듬었다. 그는 평생 시달렸던 병마까지도 쓰다듬고 달랬다. 자신도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의 한 귀퉁이를 빌려 썼다.


새가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 듯이, 그리고 그 둥지까지 없애라. 진정 무소유의 삶이었다. 욕심이 욕심을 낳는 이 시대에 그와 함께 있음이 우리에게 위안이었다.


그는 어린이 때문에 인세가 생겼으니 어린이를 위해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인세를 돌려줌으로써 그가 남긴 100여편의 동화까지 영감의 원천이었던 어린이에게 나눠주었다.


'너희들에게서 받았으니 내 것이 아니다.' 세상 끝에서도 그는 어린이처럼 맑았다. 세상의 가식과 허울을 사르고 권정생은 떠나갔다. '강아지 똥'이 부서져 민들레 속으로 들어가 꽃을 피웠듯이 그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떠났다.


그는 비움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채워 주었다. 이름을 팔고, 지식을 늘리고, 재주를 부풀리는 데 익숙한 우리들에게 권정생은 나눔과 배려와 낮춤이 무었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주위의 모든 것을 섬기다 사라진, 그 끝이 아름다운 사람, 우리는 작가 이전의 성자, 권정생을 떠나보냈다.


붙임 : 님이시여! 천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두 손 모읍니다.


- 경향신문 사설에서..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 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8-*******
주소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3월 12일 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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