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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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레오 버스카글리아(Buscaglia, Leo)
레오 버스카글리아(Buscaglia, Leo)
미국 로스엔젤레스 태생의 교육학자, 저술가.

1924년 로스엔젤레스의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1998년 6월에 74세로 생을 마감했다. 남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후 한동안 공립학교 교사를 지냈고 그후, 남 캘리포니아대학 교육학 교수로 재직했다.

사랑하는 제자가 자살하는 사건을 계기로 19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그만두고 <러브 클래스>라는 사회 교육 세미나를 열어, 미국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와 용기를 심어주는 활동에 들어갔다. 이를 계기로 '닥터 러브'라는 애칭을 얻으며 자기 달성과 사랑에 관해 전도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다.

저서로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아버지라는 이름의 큰나무>, <사랑이 교실>, <파라다이스행 9번 버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하여>, <사랑의 철학>등이 있다.

http://www.buscaglia.com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입니다.

무언가 시도해 보는 일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험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배우고, 느끼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사랑하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것만 찾는 사람은 노예요, 자유를 잃은 사람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자유인입니다.
모험을 해 보고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레오 버스카글리아(Buscaglia, Leo). 1998년 6월에 74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이 글처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살았다. 사회 교육 세미나인 <러브 클래스>로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와 용기를 심어줬던 그는 '닥터 러브'라는 애칭을 얻으며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그의 삶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아버지의 저녁 식탁이었다. 그곳은 그날 겪었던 갖가지 경험들이 버무려진 곳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한 가지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고, 저녁 식탁은 늘 새로운 사실과 경험들로 더욱 푸짐해졌다. 이 경험과 습관이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친 100권의 책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를 쓸 수 있었던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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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속에 사는 것이 삶의 가장 위대한 숙제이다. 사랑은 어느 다른 인간의 노력이나 감정보다도 더욱 미묘함과 마음의 유연성, 감수성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사랑은 관용과 순종, 지식과 힘을 필요로 하는데, 사랑이 이렇게 여러 가지의 덕성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사랑과 실제의 세계가 각각 두 개의 거대한 세력으로서 상호 모순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은 약한 마음 상태를 가짐으로써 진정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만약 일상 생활 속에서 이러한 약한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면 남들에게 이용당하고 기만당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만약 그가 이런 취약한 마음 상태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일부분을 주지 않고 간직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준 사랑의 일부분밖에 돌려 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주어도 결국 그에게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랑에는 다른 방도가 없고, 단지 사랑을 신뢰하고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사랑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표현하면 사회는 당장에 그를 기만하고 바보로 여긴다. 그가 사랑에 대해 희망을 품고, 이런 희망으로써 박애적인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은 그를 이상주의적인 몽상가라고 비웃는다. 만약 그가 정열적으로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불구자로서 '야릇한 사내'가 아닌가 하고 세상은 여기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구하여 찾아다닐 것이 아니므로, 찾는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요, 글자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랑 속에 살아감으로써 가장 인간적이며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삶의 매 순간순간을 사랑 속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세상은 그를 마음 약한 낭만주의자라고 여길 것이다.

사랑과 세상의 현실적인 일들 사이에는 수 마일 정도의 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격차를 좁히려고 시도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상 이들의 격차는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은 사랑 속에 성장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추구하려 하나, 실제 사회는 이를 실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사회의 현실은 사랑의 현실과 차이가 있다. 사회의 세력 앞에서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사랑을 믿을 수 있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렬한 힘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란 특별한 사람들이나 기회를 만나야 하는 것으로 보류해 두고, 사회의 대세에 합류하여 사랑의 진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사랑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사랑을 믿고 신뢰하며, 사랑 속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위대한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은 현실 생활에서 거의 비슷한 종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맞쳐 나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고, 간디를 암살했으며, 토마스 모어를 교수형에 처했고, 소크라테스를 독살시켰다.

사회 안에는 정직이나, 온유함, 선이나 동정이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사가 돌아가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 때문에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론>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와 같은 작품에서부터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의 정열> 및 루이스 버뉘엘의 <나자리느(the Nazarene)> 등은 이러한 사회 현상을 다룬 작품들이다.

이것은 게임과도 거의 유사하다. 사람들은 커다란 흥분을 맛보기 위해 한 인간을 고른다. 조심스럽게 어느 사람을 택하여 그의 발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숭배를 하다가는 그를 살육하고서는 커다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란 존재는 완전함을 감당해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완전함이란 것이 사람들을 만성화시키고 변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완전함을 생각한다는 것조차도 너무 불편하며 고통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완전한 상태를 뵈지 않거나 이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은 더욱 쉬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완전함에도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인간은 더욱 쉽게 이기심과 잔학성을 가지며, 기만과 조작을 행하며, 기생충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세계를 파악하려고 자신 밖의 현실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는 환멸을 느낄 것이고, 사회와 인간이 완전한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사회는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깨달음에 대처해 나가며 사랑 속에 살기 위해서는 인간은 힘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힘이 내부 속에 자리잡을 때만이 인간은 존재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주었으나 거부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무정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아무런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이 아무런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 속 굳건히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온 몸과 정신을 사랑에 바치고, 사랑 안에서 결연히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볼테르가 만들어 낸 어리석은 캉디드 같은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악이 존재하는 곳에서도 선만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은 또한 악과 증오, 편벽을 현상으로 인정해야 하나, 사랑을 더욱 큰 힘으로 보아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되며, 만약 의심한다면 그는 자신을 잃을 것이다.

인간이 구제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랑에 온 몸을 바치는 것이다. 이는 간디가 비폭력주의를 위하여, 소크라테스가 진실을 위하여, 예수가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모어가 완전성을 위하여 그들의 생명을 바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으로써만이 인간은 의혹과 혼란, 그리고 모순과 싸워 이길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용기와 확신을 얻기 위해 누구의 힘에도, 또 그 무엇에도 의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외롭고 고독한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다음의 사실들을 이해한다면 그는 한결 외로움을 덜 수가 있다.

당신이 주로 할 일은 당신의 진정한 자아를 구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의 자아를 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강해지게 하며,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갖춘 인간으로서 완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모든 사람들이 감정을 나타내며, 희망을 표현하고, 꿈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악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힘은 고통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들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며, 그들의 존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이해해야 한다.

이들 악의 힘은 적극적 사랑으로써 물리쳐야 하는데, 그러한 사랑은 오직 모든 사람들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벌이는 자유로운 투쟁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세상은 추하고, 쓰라리고, 파괴적인 곳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신이 세상에 대해 저지는 과오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도달하기 힘든 완성의 극치에 달한 모범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훌륭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변화란 불가피한 것이며, 그 변화가 사랑과 자기 실현을 위해 행해질 때 그것은 항상 바람직한 것이다.

당신은 어떤 태도를 몸에 익히기 위해, 그런 태도를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행동을 취하는 그 자체이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것을 찾기란 힘든 일이다. 당신은 잘 익어서 달콤한 즙이 넘쳐흐르는 포도처럼 세상에 내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포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인데, 사랑하는 사람은 포도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일부러 바나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또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나나가 되기로 하였더라도 가장 훌륭한 바나나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포도로 있고자 한다면 가장 훌륭한 포도가 될 것이다.

가장 훌륭한 바나나가 되지 않더라도 바나나의 상태를 감수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가장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찾아 당신을 버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면 당신은 이미 포도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장 좋은 바나나가 되기 위해 일생을 노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다시금 가장 훌륭한 포도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사랑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사랑한다.

당신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일부분이며, 어느 한 사람이라도 멀리 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멀리 한다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어느 누구도 멀리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다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버림을 받았다고 해서 불안이나 상처, 실망이나 분노를 느끼며 사랑을 거두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당신을 버린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사랑을 한 사람은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에게 준 사랑은 조건 있는 사랑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사랑을 준 것이다. 당신은 사랑을 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단지 준다는 행위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면서 사랑을 주어야 한다.

어느 사람을 사랑하다가 버림을 받았다면, 아직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진실한 사랑은 오직 '하나 뿐'이라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많은' 진실된 사랑이 있는 것이다.

위의 사랑의 조언들은 사랑을 주는 자로서의 당신에게 힘을 북돋워 줄 것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현인들의 침착성과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같은 융통성, 예술가의 감성, 철학자의 이해, 성자의 관용, 헌신자의 인내, 학자의 지식과 끈기를 마음 속에 항상 지녀야 한다. 이 얼마나 지고한 일인가! 이러한 모든 덕성은 이미 인간의 잠재력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은 단지 사랑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므로, 사랑을 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신의 인격을 닦아 나가야 한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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